각종 성인병을 치료하고 소비 지형까지 바꾸고 있는 ‘비만약’이 미국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 범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약을 쓴 뒤 미혼 여성은 결혼하거나 동거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미취업 여성은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늘었다. 비만 치료로 이른바 ‘체중 패널티(불이익)’가 완화되면서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뚱뚱한 첫인상’ 지운 비만약
레베카 다이아몬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 워킹페이퍼를 통해 비만약 투여 여성의 결혼·취업률이 올라갔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살을 빼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미국명 젭바운드)’ 등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약을 쓴 사람과 약을 쓰고 싶었지만 못쓴 사람을 비교한 결과다.
비만약을 투여한 미혼 여성은 미투여 그룹보다 결혼·동거율이 평균 18.3%포인트 높았다. 1년6개월간 추적 관찰한 결과 격차는 28.6%포인트로 벌어졌다. 투여 그룹과 미투여 그룹 간 치료 전 비만 수준, 건강 상태, 소득, 고용 상태, 배우자 유무, 삶의 질 등을 비슷하게 맞춘 뒤 비교해 정확도를 높였다.
미취업 여성의 취업률은 비만약 투여 후 미투여 그룹 대비 평균 13.2%포인트 상승했다. 1년 6개월 뒤 격차는 26.9%포인트까지 확대됐다. 주당 근로시간은 비만약 투여 그룹에서 9.9시간 증가했다. 비만약이 미혼이거나 미취업인 여성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기혼 여성은 약을 쓴 뒤에도 결혼 생활에 변화가 없었다. 직장 여성은 취업률이 2.6%포인트 내려갔지만 가구소득은 오히려 12~18% 늘었다. 일하던 독신 여성이 짝을 찾아 경제 문제가 해소되자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비만 여성에 대한 사회적 불이익이 면접과 소개팅처럼 ‘첫인상’이 좌우하는 단계에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스웨덴에서 이뤄진 고도비만 수술 연구에서도 수술 전 미혼이던 비만 환자는 수술 후 결혼하거나 짝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시 연구에선 기혼자가 수술 후 별거·이혼하는 등 ‘새 인생’을 찾아 나선 비율도 높았다.
이번 연구에선 기혼 남성만 비만약 투여 1년6개월 뒤 결별 비율이 12.1%포인트 상승했다. 남성의 취업 상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 참여한 비만약 투여 남성 표본이 적어 이 결과를 일반화해선 안된다고 설명했다.
◇미국·프랑스 등 보험 확대 잇따라
2024년 기준 미국 성인의 10%가량이 GLP-1 계열 비만약을 투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은 이달부터 고령·장애인 등을 위한 공보험 ‘메디케어’를 통해 비만약 비용 지원을 시작했다. 월 1000달러(약 153만원) 넘는 비만약을 50달러에 쓸 수 있다. 프랑스도 지난달부터 공보험에서 고도비만 환자의 비만 약값을 65% 지원해준다. 영국은 처방 확대를 위해 4월 의사 대상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권혁상 대한당뇨병학회 학술이사(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교수)는 “GLP-1 등장으로 당뇨병은 완치까지 기대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됐다”며 “국내 환자가 이들 치료제를 초기부터 적극 활용하도록 건강보험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현/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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