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을 통해 신약 개발에 집중할 별도 회사를 설립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에피스홀딩스(가칭)를 신설하는 회사 분할을 결정했다고 22일 공시했다. 분할 기일은 오는 10월 1일이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00%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전량 넘겨받아 ‘바이오 투자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한다. 신약 개발 등 신사업을 담당할 자회사도 신설한다. 존속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을 전담한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양사가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떼어내면 CDMO 고객사의 신약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승호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수주의 최대 걸림돌인 신약 개발 사업과의 이해상충 문제를 이번 분할로 해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바이오사업 지배구조 개편…위탁생산·시밀러 '양날개' 분리
바이오 지주사 삼성에피스홀딩스, 10월 출범 후 로직스 재상장 진행
삼성이 바이오사업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수주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차세대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CDMO 사업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을 병행하는 현행 체제로는 고객사와의 이해 충돌 문제를 피하기 어렵고 ‘선택과 집중’도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지주회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가칭)를 통해 신약 개발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기존 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영향이 크다.
◇10월 신설 지주사 상장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순·인적분할 방식으로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신설해 바이오의약품 CDMO 사업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완전히 분리한다고 22일 공시했다. 유승호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사장은 이날 온라인 설명회에서 “바이오의약품 CDMO와 개발을 한 회사에서 담당해 발생하는 이해 상충 문제가 사라져 각 회사가 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사들이 CDMO를 맡길 경우 신약 기술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으로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불식될 것이란 설명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100% 자회사로 둔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오는 10월 1일 출범한다. 같은 달 29일에는 존속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변경 상장하고,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재상장한다. 김경아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가 삼성에피스홀딩스 대표직을 겸임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존 주주는 존속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과 신설 삼성에피스홀딩스 주식을 0.6503913 대 0.3496087의 비율로 교부받게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거래는 9월 29일부터 10월 28일까지 일시 정지된다.
◇신약 개발 및 M&A 탄력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 바이오기업 인투셀로부터 핵심 링커 기술을 이전받아 ‘유도탄 항암제’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환자 모집이 어렵고 개발 난도가 높아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을 꺼리는 희소질환 유전자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동물실험 중으로 이르면 연내 임상에 들어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CDMO와 바이오시밀러 사업 모두 장기적으로는 경쟁이 치열해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삼성이 이번 분할을 통해 신약 사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주회사 설립 전략은 미국 진단 의료기기 강자인 애보트가 2013년 신약개발부문을 애브비로 분사한 것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사 후 애브비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를 출시해 2020년 연매출 23조원의 세계 1위 의약품으로 키웠다. 현재 애보트와 애브비의 시가총액은 각각 350조원, 420조원에 달한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지주사 로슈홀딩스와도 닮은꼴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로슈홀딩스처럼 기술 도입, 인수합병(M&A),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등 다양한 방식의 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CDMO 고객사 우려 해소
이번 분할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개발이라는 이해 상충 문제를 해소하게 된다. 삼성에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맡기는 주요 고객은 화이자, MSD(머크), 로슈,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다. 이들이 삼성에 일감을 맡길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였다. 신약 개발 노하우와 제조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암젠, 베링거인겔하임 등 바이오시밀러 경쟁사들은 삼성에 발주하지 않았다. 다른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도 최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위상이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톱5’ 수준으로 오르자 발주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유 부사장은 “이해 상충 문제가 수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며 “고객사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에 순수 CDMO 회사로 다시 출발하면서 기존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ADC,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 사전충전형 주사기(PFS) 등 신사업 분야 투자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안대규/오현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