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경전철 주민 소송단 오이천, 박순애 씨
교통硏 “하루 이용자 16만명” 예측… 실제 개통 후엔 日 이용 9000명뿐
“예측 90% 밑돌 땐 30년 손실 보상”… 2043년까지 2조원 시민 혈세 낭비
대법 “前시장, 교통硏이 214억 배상”, 12년만에… 단체장 물어내란 첫 판결
오 씨는 “1991년 용인으로 이사 온 뒤 난개발을 눈으로 확인하고 시민운동을 하게 됐다”며 “특히 경전철은 지역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노선을 잘못 짰다는 지적이었다. 용인 북부에 있는 수지구 주민들은 더 북쪽인 서울로 출퇴근하고, 서부에 있는 기흥구 주민들은 더 서쪽인 수원으로 출퇴근하는데 엉뚱하게 기흥과 동쪽 구도심을 잇는 노선이 잡혔다는 것이다.
천문학적 금액을 물어준 용인시는 ‘전국 채무 1위’가 되며 파산설이 나올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 박 씨는 “노후 학교 시설을 고칠 예산이 없을 정도로 시에 돈이 없었다”고 했다. 용인시는 공동묘지를 매각하는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뭐든 팔았다. 도로 확장, 공원 건설, 공공시설 증축 등이 줄줄이 미뤄지며 주민 삶의 질에도 타격을 줬다.주민 소송 아이디어는 용인 시민단체들이 대책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들 두 사람을 포함해 총 12명이 소송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승소 가능성을 두고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이 전 시장은 2002∼2006년 재임 시절 “소모적 논쟁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경전철 반대 운동에 적대적이었다. 주민 중에서도 “대안이 있느냐”, “이길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 씨는 “이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엉터리 수요 예측에 기반해 방만하게 사업해 놓고, 아무도 책임을 안 지는 게 너무 화가 났다”고 소송 참여 이유를 밝혔다. 마침 무료 변론을 맡아 줄 변호사가 나타나 주민들이 부담한 비용은 인지대 등 수백만 원에 그쳤다.
하지만 4년 동안 진행된 1, 2심 재판에선 주민들이 졌다. 법적으로 주민소송은 주민감사를 청구한 후에만 제기할 수 있는데 주민들이 청구한 소송과 감사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2심 패소 후 “대법원에서도 지면 상대방 소송 비용까지 물어줘야 하고 자칫 손해배상청구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오 씨는 “만약 3심서도 패소해 돈을 물어내게 되면 동등하게 나눠 내기로 뜻을 모았다”고 돌이켰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자비를 들여 수원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으로 피켓 시위를 다녔던 오 씨와 박 씨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2020년 대법원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재판부가 “주민소송은 감사 청구와 관련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며 사건을 파기한 뒤 2심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소송을 거쳐 이달 16일 주민 승소가 최종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현 용인시장이 이 전 시장과 교통연구원을 상대로 214억68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판결했다. 이 전 시장은 재판과 별개로 진행된 수사에서 경전철 시공업체에 압력을 넣어 측근이 운영하는 회사에 하도급을 주게 하고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오 씨는 “기획재정부에서 ‘승객이 수요 예측의 90%를 밑돌 땐 30년 동안 차익을 보전한다’는 계약 조항에 문제를 제기했다. 보전액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전 시장은 계약을 밀어붙였다”고 했다. 박 씨는 “지금도 매년 300억, 400억 원씩 보전해 주고 있다. 이 전 시장을 포함해 역대 용인 시장 7명 중 6명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았다. 뭔가 잘못 돌아갔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물었다.경전철 계약 및 추진 과정에서 시의회의 견제 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 용인시는 시의회에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고, 시의원 21명 중 18명은 봄바디어 측의 지원을 받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박 씨는 “시의원들이 예산 감시만 철저하게 했다면 경전철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연구원 역시 연구원들이 봄바디어 측으로부터 해외 견학을 지원받고 명절마다 선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사업 시작 때 교통연구원은 200명이 탈 수 있는 객차 1량만 가동해도 하루 승객이 16만 명에 이를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오 씨는 “전체 노선에 10대가 동시에 움직여도 특정 시점의 최대 승객은 2000명뿐이다. 16만 명이 이용하려면 낮에도 계속 만원 열차로 다녀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국책 연구기관에서 왜 이런 전망치를 내놓았는지 알 수 없다고 오 씨는 말했다. 교통연구원은 재판 과정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분석을 진행했다’는 식의 입장만 밝혔다.
교통연구원 분석 당시 50만 명에 못 미쳤던 용인 인구는 100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개통 직후 9000명이던 하루 이용객은 지금도 하루 4만 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다. 여전히 교통연구원 예상치의 30%에 못 미친다. 오 씨는 “교통연구원에서 비합리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는 데 모종의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만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선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12년 동안 재판이 진행되면서 주민소송단은 7명으로 줄었다. 오 씨는 “일부는 이사를 갔고, 시의회 등 공직에 진출한 사람도 있었다”며 “하지만 남은 사람들끼리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서로 격려했다”고 말했다.
용인 경전철은 외환위기 이후 재정이 충분치 않은 정부와 지자체가 우후죽순 민자투자 사업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진행됐다. 오 씨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특성상 적자가 나기 쉬운데 국가나 지자체가 적자는 물론이고 투자자 이윤까지 보전해 주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도로 위에 고가를 만들어 그 위를 달리는 경전철은 아파트 조망권 문제 등이 있어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용인 경전철 재판이 이슈가 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주민 소송을 하고 싶다며 소송단에게 문의하기도 했다. 오 씨는 “최근은 민자 사업을 하더라도 운영사가 수익을 내는 방법을 찾아야지 적자 보전은 못 해 준다는 게 지자체들의 입장”이라며 “이번 판결로 지자체장들도 보여줄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사업을 추진할 경우 반드시 개인이 책임을 진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판에서 이겼지만 오 씨와 박 씨에게 돌아오는 금전적 혜택은 없다. 용인시가 이번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앞으로 소송을 내서 이 전 시장과 교통연구원이 손해를 배상하더라도 전액 시에 귀속될 뿐이다. 오 씨는 “주변에서 ‘재판에서 이겼으니 얼마 받느냐’고 물어올 때마다 쓴웃음이 나온다”며 “소송 비용을 돌려받는 것도 역시 주민이 낸 용인시 재정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 큰 액수는 아니지만, 보전받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박 씨는 “이상일 현 용인시장이 판결 내용대로 하루빨리 이 전 시장과 교통연구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제대로 진행하는지 끝까지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이 전 시장 개인이 214억 원이란 막대한 피해액의 일부를 국가에 내놓을 여력이 있는 걸까. 이 전 시장은 2005년 공직자 재산 등록 때 신고한 재산은 31억 원 규모지만, 20년 전의 일이다. 오 씨는 “중요한 판례를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 교통연구원 등 연구용역 수행 기관에 외압이나 무리한 요구가 가해졌을 때 ‘우리가 거덜 난다’며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기면 좋겠다. 그러면 지자체의 무리한 사업 추진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이천(65)
△1960년 충북 증평 출생
△1988∼2008년 서울농수산식품공사 근무
△2010∼2022년 용인미래포럼 환경분과위원장
△2008∼2015년 한경국립대 겸임교수
△현재 ㈜행복한조경 대표
박순애(70)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1981∼1982년 원풍모방노조 부조합장
△2006∼2008년 용인참여자치시민연대 활동
△2012∼2015년 용인시주민참여예산위원
용인=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