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억2000만원을 벌고 남들은 2억원을 버는 세상과, 나는 1억원을 벌고 남들은 8000만원을 버는 세상 중 어느 세상에 살고 싶으세요?”
분명 1억2000만원을 버는 게 더 좋지만, 대다수가 후자를 택한다. 자녀가 95점을 받아도, 평균 점수가 98점이면 어쩐지 속상하다. 비교심리는 돈, 자녀와 맞물리면 증폭력이 엄청나다. 명문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인 ‘4세 고시’가 유행일 정도로 남들보다 더 빨리 시키고자 하는 교육 경쟁은 극에 달했다. 외모적으로도 자녀가 손해 보고 클까 봐 미리 클리닉을 찾아 늦기 전에 성장 호르몬을 맞힌다. 경쟁력 있는 호감 가는 얼굴을 만들고자 성형도 한다. 남들보다 무엇에서든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만족의 끝'
키는 평균 이상, 얼굴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귀티 나는 옷을 입고, 좋은 가방을 들며, 남부럽지 않은 차를 타고, 남들이 무시하지 않는 동네에서 괜찮은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자녀도 좋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 여기엔 진짜 자신의 기준이 없다. 누군가에게 우월감을 느끼면 다른 누군가에겐 열등감을 느낀다. ‘남들’을 기준으로 두고 그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면, 만족과 충족은 없다.
지난 5월 은퇴를 선언한 투자계의 살아 있는 전설 워런 버핏은 “세상을 바꾸는 건 탐욕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라고 했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상황인데도 시기심에 만족이 안 된다. 물론 ‘질투는 나의 힘’이란 말처럼 성장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쟤가 하는데 내가 못 할 게 뭐야’라는 마음. 공부도 더 하게 만들고 경쟁하며 성장하게 한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해지니 부작용이 커진다. 나를 넘어 자녀를 향해 “쟤가 하는데 네가 못할 게 뭐야”라는 말이 나와버린다. 유치원 아이들이 긴 영어 지문을 읽고 추론하는 중·고등학생용 문제를 풀고 영어 에세이를 외워 쓴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뇌 발달이 오히려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성장을 지지한다. 일정 정도의 비교를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만족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비교라는 개미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들이 모두 어디에 사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로 서로를 평가하는 세상에서 혼자 고고하기가 쉬운 건 아니다.
SNS 탓에 더 커진 비교 지옥
과거엔 친척, 가까운 친구, 지인들만 비교 대상이었다면 요즘은 그 범위가 확장됐다. SNS 때문이다. 피드 알림 소리에 보니, 누구네 아이가 유명하다는 학원 ‘레테’(레벨 테스트)에 합격했다는 소식이다. 또 누구네는 명문대 합격증을 올렸다. 서울 반포 신축 아파트로 이사한다며 찍은 사진도 보인다.
어쩐지 가만히 있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무엇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SNS엔 정제된 모습만 올라온다. 꾸밈없어 보일지라도 그조차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남이 자신을 판단해주는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결국 이웃의 노예가 되고 만다”고 했다. 정말 비교해야 할 것은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 현재의 나, 내일의 나여야 한다.
김나영 서울 양정중 사회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