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 쉔부른 궁전을 방문한 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18세기 황제들이 사용한 금장식 변기를. 구멍 뚫린 의자에 앉아 용변을 보고 물을 부어 내리던 시스템은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파트 화장실과 비교하면?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것이 바로 문명 발전의 본질이다. 어제의 사치품이 오늘의 최저 기본품으로 변한다.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명언처럼, 인공지능(AI) 미래도 마찬가지다. 현재 월 수백만원을 지불해야 이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AI 서비스가 수년 후에는 무료 또는 월 몇 천원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구글이나 MS의 거대한 데이터센터에서만 가능한 고도의 연산 작업이 개인용 스마트폰에서도 실행될 날이 온다.
◇우리는 여전히 '더 빠른 말'을 찾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과거 제품 기준의 '효율화'라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이 AI 도입 목표를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에만 두고 있다. 대규모 개발자 인력을 감축하고, 골드만삭스는 2025년까지 전체 직원의 30%를 AI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AI 상담원으로 콜센터 직원을 대폭 줄이고 있다. 증기기관이 발명됐을 때 마차 제조업체들이 '더 빠른 말'을 찾으려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혁신은 기존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남는 시간에 불가능을 설계하라
AI를 적극 도입해 업무 처리 시간을 줄였다면, 그 남는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직원을 해고할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높은 제품과 서비스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데 투입해야 한다.
AI를 통해 질병 정복이라는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딥마인드의 알파폴드가 단백질 구조 예측에 성공한 것처럼, AI는 신약 개발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1~2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암, 치매, 파킨슨병 같은 난치병 치료제 개발이 가속화할 것이다. 우주 탐사는 어떨까. 스페이스X가 재사용 로켓으로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인 것처럼, AI 기술은 우주선 설계부터 생명 유지 시스템까지 혁신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달 여행이 현재의 해외여행 수준으로, 화성 여행이 지금의 남극 탐험 수준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AI 튜터가 각 학생의 학습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면, 모든 아이가 최고수준의 개인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소수 엘리트만이 누렸던 최고 수준의 교육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거창한 미래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변화도 많다. LLM을 활용해 국내 언론사들이 세계 주요 언어로 기사를 서비스하는 것, 한류 콘텐츠를 다언어로 번역해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것,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어르신을 위해 자연어 음성대화 방식의 새로운 UI를 개발하는 것 등 널려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지도자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AI의 보편적 보급은 생산성과 효율의 기하급수적 향상을 가져온다. 기업과 국가의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단순한 인력 감축이 아니라, AI가 가능하게 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목표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것이다. AI 시대의 새로운 가치와 목표, 패러다임을 창조할 비전이 필요하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에도 기존 일자리는 사라졌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직업이 무수히 생겨났다. 자동차 정비사, 전기기술자, 화학공학자 같은 직업은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AI 시대에도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와 기회가 무한히 펼쳐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큰 꿈을 꾸는 것이다. 광대한 제국의 황제들만이 사용하던 궁전의 수세식 변기가 평범한 아파트 화장실이 되었듯이, 지금의 불가능이 내일의 당연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이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