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IP 경쟁력 없이 반도체 미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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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웅 특허법인 정진 대표변리사김순웅 특허법인 정진 대표변리사

한국은 오랫동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TSMC를 중심으로 한 대만 파운드리 산업은 기술과 수율에서 빠르게 격차를 벌리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목표로 천문학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판도가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기술 혁신보다 기존 시장점유율 유지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위기를 방치하면 한국 반도체는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날 우려가 크다.

과거 생산능력과 미세공정 경쟁이 반도체 산업의 중심이었다면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지식재산(IP) 경쟁'이라는 새로운 전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선도기업은 강력한 IP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막대한 로열티 수익을 창출하거나, 경쟁사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TSMC는 반도체 제조 공정 관련 특허를 수천 건 이상 보유하며, 고객사로부터 안정적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ARM은 CPU 아키텍처 특허를 기반으로 모바일 및 IoT 분야 표준이 됐다. 인텔과 퀄컴은 수많은 IP 라이선스를 통해 매출의 상당 부분을 로열티로 벌어들이고 있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에 대한 권리를 먼저 확보한 기업이 시장의 룰을 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특허 출원량은 많아도 표준특허 비중이 작고, 글로벌 소송에서 방어력도 취약하다. 주요 기술 분야 핵심 특허는 여전히 미국과 일본, 유럽 기업들이 장악했다. 한국 기업은 이들과 소송을 피하는 방어적 전략에 머물러 있다.

최근 10년간 글로벌 반도체 특허소송 사례를 보면 피소 사례는 많으나 공격 사례는 매우 적다. 이는 특허를 방어 수단이나 정부 과제 결과물로만 인식한 결과다. R&D와 특허 전략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중심 전략에 갇힌 채 글로벌 표준 특허 확보나 전략적 포트폴리오 설계가 미흡한 현실은 기술이 있어도 시장에서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우리 기술을 보호하고 활용할 수 있는 IP 기반 전략을 수립해야만 한다.

먼저, R&D와 IP창출 연계 강화가 요구된다. 기술개발과 동시에 특허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연구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어야만 한다. 특허는 연구 종료 이후 부수적 결과가 아닌 기술개발과 동시에 고려될 핵심 요소다.

개방형 혁신 기반 IP 협력 생태계 구축도 시급하다. 대학과 연구소 및 스타트업과 협력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권리화해야 한다. 공동 출원 및 기술이전, 크로스 라이선스 등으로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며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과 조기 협업해 생태계 전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IP 사업화 및 금융 연계 확대도 중요하다. 보유 특허를 단순 방어 수단이 아닌 사업화와 IP 기반 금융(특허 담보 대출, IP 펀드 등)으로 연계해야 한다. 글로벌 IP 거래 시장에서 한국의 참여는 미미한 수준이며, IP 자산화 인프라와 전문 인력 확대가 절실하다.

기업은 기존 R&D 중심 조직을 넘어 IP 기획과 관리 및 사업화 기능을 강화하며 사내 변리사 및 IP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특허 동향 분석을 기반으로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IP를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는 경영 철학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다시 글로벌 무대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IP 중심의 전략 전환'은 필수 요소가 됐다.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은 이제 공정 설비가 아닌 특허 데이터베이스에서 벌어진다. IP는 산업 경쟁력의 최후 보루이며 미래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무기다.

한국은 과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세계를 선도한 경험이 있다. 성공 경험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이제 '특허 강국', 'IP 강국'으로서 전략적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반도체 IP를 중심으로 IP 강국으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다.

김순웅 특허법인 정진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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