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역설…국내선 찬밥, 해외 가는 리걸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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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리걸테크(법률+기술) 기업이 수백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연달아 성공했다. 리걸테크는 과거 직역단체와의 갈등으로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은 영역이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법률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지면서 다시 투자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확보한 투자금으로 일본 등 아시아 법률 AI 시장을 뚫겠다는 계획이다.

◇ 실탄 장전한 K리걸테크

16일 업계에 따르면 리걸테크 기업 로앤컴퍼니는 최근 5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 국내 리걸테크 투자 유치 금액으로 역대 최대다. 변호사 검색 플랫폼 ‘로톡’으로 유명해진 로앤컴퍼니는 최근엔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AI 비서 솔루션 ‘슈퍼로이어’에 힘을 쏟고 있다. 투자를 주도한 IMM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법률시장 판도를 바꿀 AI 영역에서 성공 사례를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출시된 슈퍼로이어는 1년 만에 변호사 가입자 1만2000명을 확보했다. 국내 전체 개업 변호사의 30%가 넘는다.

규제의 역설…국내선 찬밥, 해외 가는 리걸테크

다른 리걸테크 기업 엘박스도 지난달 3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엘박스 역시 변호사를 겨냥한 AI 보조 솔루션 엘박스AI를 운영하고 있다. 엘박스엔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인 레전드캐피털이 자금을 넣어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리걸AI 솔루션 앨리비를 운영하는 BHSN도 최근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은 불확실한 규제와 변호사단체와의 갈등으로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발전하고 1년 전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AI 솔루션 시장이 열린 이후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리걸테크업계 관계자는 “법률 AI의 활용 가능 범위를 두고선 아직 논란이 있지만, AI를 활용하는 법조인은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문서 작업이 많은 법률 분야는 AI 적용이 가장 빠른 시장으로 꼽힌다. 2022년 설립된 미국의 AI 리걸테크 기업 하비AI는 설립 3년 만에 50억달러(약 6조9000억원)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법률 AI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성공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 “아시아 법률 AI 공략”

국내 리걸테크 기업이 노리는 1차 해외 공략 지역은 한국과 법 체계가 비슷한 일본이다. 일본엔 벤고시닷컴 등 리걸테크 유니콘 기업이 있지만 AI 적용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로앤컴퍼니는 슈퍼로이어를 들고 일본 공략을 시작했고, 엘박스도 내년 진출을 준비 중이다. BHSN 역시 일본 법인을 설립하고,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권 법률 AI 시장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임정근 BHSN 대표는 “미국 AI는 미국 데이터 중심으로 학습돼 있다”며 “우린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 데이터에 강점이 있다”고 했다.

일본과 미국 등 주요국은 법률 AI의 정책 가이드라인이 이미 정립돼 있다. 일본 법무성은 AI 기반 계약서 서비스의 법적 합법성 기준을 명확히 했다. 미국 변호사협회도 리걸 AI의 기준을 정리해 발표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 법률 AI 적용에 대한 법적 기준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공개된 법무부의 리걸테크 가이드라인에서도 AI 영역은 빠졌다. 이병준 고려대 리걸테크센터장은 최근 토론회에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통한 법률서비스 제공이 법률 사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부터 마련해야 한다”며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국내 법률 AI 시장의 성장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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