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 플랫폼서 피싱…캄보디아 조직원 '나사 직원' 사칭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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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테초국제공항에 게양된 캄보디아 국기. 사진=뉴스1

캄보디아 테초국제공항에 게양된 캄보디아 국기. 사진=뉴스1

'캄보디아발(發) 피싱'으로 추정되는 범죄 행위가 국내 재능마켓 플랫폼에서도 이뤄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재능마켓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에게 온라인 상점 개설을 빌미로 돈을 가로채는 수법을 쓰는 만큼 사용자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7단독 노형미 판사는 최근 사기방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한경닷컴이 입수한 판결문을 보면 캄보디아에 기반을 둔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이 국내 한 재능마켓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미끼를 던진 정황이 확인된다.

A씨가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지난해 3월 재능마켓 앱을 이용해 피해자 B씨에게 접근했다. B씨는 "온라인으로 사이트에 상점을 개설한 뒤 공급업체에 물품대금을 지불하면 고객이 공급업체로부터 물품을 받은 다음 대금에 수익금을 더해 지급하겠다"는 조직원들 설명에 속았다.

B씨는 조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한 주간 총 10차례에 걸쳐 돈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사이트에 온라인 상점을 개설하라는 조직원의 꾀임에 넘어가 피해가 더 커졌다.

조직원들은 또 다른 피해자에게 접근해 같은 방식으로 9일간 11차례에 걸쳐 돈을 뜯어냈다. 이들이 피해자 2명에게서 가로챈 금액은 총 1억4166만원에 달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현금 인출·수거책을 맡은 A씨는 B씨에게서 받은 돈으로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사들인 뒤 조직이 지정한 전자지갑으로 보냈다.

조직원들이 돈을 뜯어내는 수법은 각양각색이었다. '내가 알려주는 사이트에 투자하면 원금뿐 아니라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식으로 돈을 가로채는 고전적 수법은 물론이고, 한 조직원은 자신을 미국 항공우주국(나사·NASA)에서 일하는 우주비행사라고 소개해 호감을 쌓은 뒤 "화성에 대신 갈 사람을 구하기 위해 2800만원이 필요하다"는 거짓말로 돈을 받아내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A씨는 공소 제기 직후인 같은 해 11월 캄보디아로 도주했다. 법조계에선 그간 유사 사례들을 종합하면 A씨가 캄보디아 내 조직 본거지로 합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A씨는 이후 귀국하지 않은 채 재판 절차를 회피하고 있다.

노 판사는 "A씨가 보이스피싱 범죄를 방조해 죄책이 무겁고 피해금액 합계가 약 7억8600만원에 이르는데도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 엄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캄보디아 대응 관련 간담회를 통해 캄보디아 한인 납치·감금 스캠 사기 사건에 가담한 한국인 수가 1000여명 남짓이라고 전했다. 위 실장은 "캄보디아 스캠 사업엔 다양한 국적의 20만명 정도가 종사하고 있고 한국인이 일하는 숫자도 상당한 규모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재능마켓의 경우 현시점에선 범죄 대상을 물색하는 통로에 그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다른 정보기술(IT) 플랫폼들도 범죄 대상자를 유인하는 통로로도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중고거래 플랫폼, 구인구직 플랫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동남아 지역 구인글이 여전히 눈에 띈다.

플랫폼 업계에선 자발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잡코리아는 지난달 24일 해외 채용공고 검증 절차를 강화했다. 해외 채용공고 시스템을 개편해 △과장 급여·근무조건 공고 필터링 강화 △해외 채용공고 안내 문구 보강 △캄보디아 지역 공고 사전 검수·승인 절차 의무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몬도 금융권 이상거래탐지(FDS) 개념을 채용공고에 적용한 인공지능(AI) 기반 자동화심사시스템(FJDS)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무료 공고 중 허위·불법 게시물을 사전 차단한다는 설명이다.

정보통신망법은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방조하는 내용의 정보를 유통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이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규정으로 플랫폼을 규율하는 조항이 아니다.

이성엽 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은 "일반적 범죄까지 모니터링하고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하는 의무는 아직 입법이 되지 않았다"며 "지금 상황에선 플랫폼이 자발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게 최선인 상태인데 '삭제·차단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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