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의원은 상법 개정안 강행 처리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정답’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현실화됐을 때의 ‘표’일 거다. 주 52시간 문제처럼 경영계와 노동계가 반반으로 나뉘는 이슈는 선뜻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 어렵지만, 상법 개정은 기업에 비해 절대다수인 1500만 ‘개미’ 편을 들면 되니 고민의 여지가 없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5일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 폐지를 깜짝 발표한 직후 당 지지율(한국갤럽 기준)이 한 주 만에 6%포인트 오르는 걸 경험했다. 당시 민주당의 한 지도부 의원이 고무된 표정으로 “개인투자자들이 ‘금투세와 세트로 묶어 상법 개정안도 빨리 처리해 달라’고 난리다”라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
이런 배경 속에 상법 개정안이 13일 기어코 국회 문턱을 넘겼다. 기업들은 가뜩이나 숨 막히는 트럼프 2기 공세 속 해외 행동주의 펀드까지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특히 모든 주주에 대해 이익을 충실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이사 충실 의무’ 도입 가능성에 이사회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지금도 사외이사들이 모이면 어떻게 해야 소송을 피할 수 있는지 각자 노하우를 공유하는 실정인데, 이제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까지 주주로서의 이익이 침해됐다며 소송을 걸어 와도 피할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13일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이 처리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가 들어올 여지가 훨씬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가에는 기업의 경쟁력과 업황, 정치·경제 이슈 등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다. 상법 개정안이 처리된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알아서 해소되고, 주가가 오른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애초에 행동주의 펀드는 ‘차익’을 노리는 집단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평가 수준과 직접적인 상관은 크지 않다. 미국 주식시장은 우리와 반대로 고평가된 경향이 있지만, 액티비스트 펀드의 본고장 격이다.
물론 그동안 물적분할 등으로 소액주주 ‘뒤통수’를 쳐 온 일부 대기업도 있다. 이런 횡포가 문제라면 해당 폐해에 대한 핀셋 규제로 충분히 가능할 텐데 막무가내식 전방위 규제를 하자는 건 개미투자자들의 막연한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삼성과 현대차는 2016년과 2018년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으로부터 각각 30조 원과 8조 원 규모의 주주 환원 요구를 받은 바 있다. 요즘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해 단기 수익만 챙긴 뒤 날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을 두고 ‘먹튀’ 논란이 한창이다. 그렇게 몇 번을 당하고도 행동주의 펀드에 스스로 알아서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통한 ‘밸류업’이 아닌 ‘밸류다운’에 가까운 조치다. 아무리 표가 중요하다지만 민주당에 정답이 기업엔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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