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80년대 초부터 정부와 기업이 디지털 전환 시대를 선제적으로 준비한 전략이 있었다. 당시 TV, VTR, 오디오 등 아날로그 기술이 주류였지만, 제품 차별화를 위해 디지털 기술을 도입했고, 그 핵심이 시스템반도체 자체 개발이었다.
예를 들어 1996년 삼성은 자체 설계한 주문형 반도체(ASIC)를 명품플러스-1 TV에 적용해 화질을 개선했다. 이후 삼성과 LG는 디지털 TV 시대에 진입하면서, 시스템반도체의 자체 생산을 통해 소니 등 글로벌 경쟁사를 이길 수 있었다.
이제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다. 오늘날 전자·전기제품은 모두 디지털 기술 기반이다. 과거 아날로그 TV에 디지털 기술이 차별화의 수단이었던 것처럼 자동차, 로봇, 가정, 공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스템반도체 적용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특히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개발이 중요하다. 온디바이스 AI란 인터넷을 통한 클라우드나 원격 서버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PC 등 디바이스 자체에서 AI가 작동하는 기술이다. 오픈AI의 챗GPT는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로, 사용자의 요청을 클라우드에서 처리해 답변을 제공하지만 온디바이스 AI는 이와 달리 기기 내부에서 직접 연산이 이뤄진다.
현재 온디바이스 AI는 학습보다는 추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추론 서비스는 필요할 때만 작동해 전력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는 2017년부터 신경망 처리장치(NPU)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시스템반도체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는 NPU라는 AI 코어가 탑재되어 화질 개선 등 다양한 기능에 쓰였다. 본격적으로 생성형 AI 모델이 탑재된 온디바이스 AI의 활용은 2024년 출시된 삼성 갤럭시 S24가 최초다.
온디바이스 AI는 제조업에서 두 가지 측면에서 강점을 보인다. 첫째, 제품 차별화다. 스마트폰 화질 개선, 음성인식, 번역·통역 서비스, 자율주행차 등에서 활용된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차용 AI 시스템반도체를 자체 개발해 경쟁력을 높였다. 스마트TV, 노트북, 로봇청소기,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 방산 무기체계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둘째는 AI 제조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다. 사물인터넷(IoT) 기반에 AI를 접목한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 기술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팩토리, 스마트홈, 스마트시티 등에서 AIoT용 시스템반도체가 필요하다. 특히 스마트팩토리의 AI 활용은 제조업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공장 내 기계 설비의 고장 시기를 예측해 사전 예방 정비를 최적화하거나,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불량률을 낮추고 생산수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제조업 강국이다. 제조업이라는 강점과 AI 반도체를 활용할 시장을 모두 갖추고 있다. AI 시대 새로운 시작은 우리에게 큰 기회다. 국내 제조기업은 4~5년을 내다보는 칩 기획 역량을 갖춰야 하며, 칩 설계뿐 아니라 AI 모델 최적화와 소프트웨어(SW) 개발도 매우 중요하다. 대학은 AI 인재를 육성하고 정부는 AI 팹리스, 파운데이션 AI 모델 기업, SW 기업을 적극 지원해 개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온디바이스 AI의 방향은 명확하다. 제품 차별화와 제조 생산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온디바이스 AI 반도체를 선점해야 할 때다. 이제 국내 제조업을 이끄는 온디바이스 AI 반도체에 집중하자.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산업통상자원부 K-온디바이스AI과제 총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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