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자사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미국에서 유통회사 자체 브랜드(PL) 방식으로 공급한다. 미국 처방약 시장 유통의 50% 이상을 점유한 대형 업체와 바이오시밀러 동맹을 맺은 세계 첫 사례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연간 조 단위 신규 매출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미국 1위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인 익스프레스스크립츠, 2위 CVS케어마크와 각각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의 PL 방식 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익스프레스스크립츠는 ‘쿠엘런트’, CVS케어마크는 ‘코다비스’라는 자체 브랜드로 연내 미국 전역에 출시한다. 바이오시밀러 회사가 PBM ‘빅3’ 업체 중 두 곳과 한꺼번에 PL 공급 계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빅3 업체는 미국 처방약 시장 유통의 총 80%를 점유하고 있고, 이 중 익스프레스스크립츠와 CVS케어마크의 점유율은 두 회사를 합쳐 57%에 달한다. PBM은 의료보험이 민영화된 미국에서 의약품 유통구조의 최상단에 있다. 의약품의 진입과 퇴출, 가격 등을 결정한다.
세계 10대 매출 의약품인 스텔라라는 개발사인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특허 만료로 올해 초 미국에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열렸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 미국 암젠, 독일 포미콘 등 세계 7개 바이오시밀러 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미국 PBM이 수만 개 약국 네트워크 공급 물량의 90%가량을 PL 제품으로 채울 것으로 전망한다. 이 경우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연간 1조원 이상의 신규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미국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시장 대전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승리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美PBM 2곳과 동시 계약…바이오시밀러 사상 최초
57% 점유 '의약 공룡'과 맞손,2022년 산도스에 계약 빼앗겨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연간 10조원 규모인 미국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에서 승기를 잡았다. 경쟁사들을 제치고 현지 대형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두 곳과 유통사 자체브랜드(PL) 방식의 공급 계약을 맺으며 조단위의 신규 매출 창출을 예고했다. 유럽에 이어 미국 자가면역질환 바이오시밀러 시장도 평정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美시장 57% 움켜쥔 ‘빅2’와 계약
16일 업계에 따르면 PBM은 미국 민영 의료보험 체계에서 제약사·보험사·약국·병원·환자를 연결하는 유통망의 중심축이다. 삼성이 판로를 뚫은 미국 1위 PBM 익스프레스스크립츠는 미 전역에 6만2000여개의 약국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2위인 CVS케어마크 역시 9000개 이상의 직영 약국과 1000여개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두 회사가 관리하는 환자만 2억명으로, 미국 전체 처방약 유통 시장의 57%를 차지한다. 두 회사의 연간 관련 사업 매출만 350조원에 달한다.
익스프레스스크립츠 등은 임상의학적 효능과 안전성, 공급 안정성, 가격 등의 요인을 평가해 자사 PL 제품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스텔라라(성분명 우스테키누맙) 바이오시밀러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텔라라는 미국 제약사 얀센이 개발한 판상 건선, 건선성 관절염,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다.
◇ 23조원 시장 판도 바꿔
PL 제품은 세계 최대 매출 의약품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의 연 23조원 규모 미국 시장 판도부터 바꿨다. 2023년 당시 9곳의 세계 바이오시밀러 업체가 이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했지만 초기 시장점유율은 다 합쳐도 2%에 불과했다. 오리지널 의약품 회사인 미국 대형 제약사 애브비의 철통 방어 때문이었다. 하지만 CVS케어마크가 스위스 제약사 산도스와 손잡고 지난해 1월 사상 첫 PL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출시하자 시장이 뒤집어졌다. 출시 3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15%를 장악하며 애브비의 아성을 흔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PBM이 PL 제품을 통해 제조·처방·유통을 통합 관리하면서 중간 유통 비용이 절감돼 환자에게 더 저렴한 가격에 바이오시밀러 공급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출시 당시 CVS케어마크와 협상을 통해 세계 최초 PL 제품 출시를 준비했으나 아깝게 산도스에 자리를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휴미라 시장에서 PL의 위력을 목격한 바이오시밀러 회사들은 앞다퉈 PBM사들과 손잡고자 했지만 4년 전부터 준비해온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빅3’ PBM 중 2곳을 잡으면서 최종 승자가 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PBM의 신뢰를 얻기위해 전임 고한승 사장 시절부터 현 김경아 사장까지 4년전부터 연간 수십차례 미국을 방문해 PBM 최고위층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빅3’ PBM인 옵텀RX는 미국 제약사 암젠과 손잡고 PL 제품을 출시했다.
◇ 유럽 이어 美도 1위 기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번 계약으로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스텔라라 시장 1위를 선점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10조원 미국 시장에서 최소 10%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신규 매출을 수조원까지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미 유럽에선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시장 점유율 43%로 1위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핀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 8개국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다른 자가면역치료제인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시장과 희귀 혈액질환 치료제인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도 유럽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 분할로 오는 10월 사업지주회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 아래로 편입된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신약을 전문으로하는 자회사도 설립할 예정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