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으로 84억 벌었다…연상호 '얼굴' 대박 비결 [무비인사이드]

1 month ago 12

영화 '얼굴' 스틸컷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 스틸컷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이 영화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얼굴'은 지난 26일 기준 누적 관객 82만 4653명을 동원하고, 매출액 84억 원을 기록했다. 또 2025년 개봉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TOP 10에 진입했다. 순제작비 2억 원으로 만들어진 초저예산 영화가 개봉 16일 만에 수십 배의 성과를 거두며 업계 안팎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모양새다.

'얼굴'은 앞을 보지 못하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살아온 아버지 '임영규'(박정민, 권해효)와 그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야기의 밀도와 묵직한 정서, 그리고 장르적 쾌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태초의 연니버스' 귀환이라 부르며,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이 다시 한번 한국 영화계에 강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얼굴'의 시작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 감독은 당시 '얼굴'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사를 찾았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연 감독은 "대본을 가지고 여러 차례 투자를 받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영상화가 힘들다는 판단이 내려 결국 그래픽 노블 형태로 먼저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2억으로 84억 벌었다…연상호 '얼굴' 대박 비결 [무비인사이드]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연 감독은 다른 결심을 하게 된다. "돈이 없어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 끝에 자신의 제작사 와우포인트를 통해 직접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작비는 2억여원. 지난해 독립·예술영화의 평균 제작비(3억 원)에도 못 미치는 초저예산이었다.

보통 상업영화가 50~80회차 이상 촬영하는 것과 달리, '얼굴'은 단 13회차, 불과 3주 만에 촬영을 마쳤다. 연 감독은 "제작비에서 가장 큰 비중은 촬영 회차다. 압축적이고 현실적인 회차를 통해서도 충분히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놀라운 점은 제작 시스템에도 있다. 배급은 메이저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맡았지만, 제작비는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액을 연상호 감독의 제작사 와우포인트가 부담한 셈이다.

출연 배우와 스태프는 출연료 대신 러닝개런티, 즉 지분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배우에 따라 10% 언저리에 지분을 배분받았고, 스태프들도 동일한 조건으로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영화가 흥행하면 이들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늘어난다. 현재 흥행세를 고려하면 최소 20배 이상의 수익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 '얼굴' 스틸컷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 스틸컷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연 감독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영화동아리처럼 모여서 토론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즐거웠다. 큰 영화 현장에선 느낄 수 없는 창작의 즐거움이 있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의 도전은 단순한 제작 실험이 아니었다. 그는 창작자로서 위기감을 느끼고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했다. 연 감독은 "제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유튜브를 왜 그렇게 재미있게 보는지 알겠더라. 제가 보기엔 퀄리티가 떨어지는 데 아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재미가 있으니까 보는 거였다"라며 "영화라고 하는 것이 웰메이드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게 아닌가 싶었다"고 고백했다.

아내와 함께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면서 '얼굴'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연 감독은 "내용은 '얼굴'인데 1시간 정도 되는 콘텐츠인데도 충분히 몰입해서 재밌게 봤다. 결국 영화도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콘텐츠다.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투자·배급사들은 호불호를 줄이는 쪽으로 제시한다. 저는 그게 재미가 없더라. 영화는 모난 구석이 있어야 메시지가 있다. 지금 모든 문화가 팬덤 문화로 가고 있는데, 뾰족한 게 없으면 팬덤이 생기지 않는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얼굴'의 성공을 곧바로 충무로의 대안으로 일반화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연상호 감독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다. '부산행' 감독 아니냐. 넷플릭스에서 줄줄이 작품을 내는 입지가 남다른 연출가"라며 "상업영화는 2억 원으로 절대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완벽한 독립영화라고도 할 수 없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영화 '얼굴' 스틸컷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 스틸컷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실제로 연상호 감독은 웹툰 작가 출신으로 '부산행', '지옥', '돼지의 왕', '기생수: 더 그레이' 등 굵직한 작품을 흥행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미 '천만 감독'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감독이기에 가능한 제작 방식이라는 평가다. 무엇보다 플러스엠이라는 대형 배급사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적인 독립영화가 갖지 못한 조건이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연상호이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최근 '어쩔수가없다'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연상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저예산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한 기획이 따로 있을 것 같다. 연 감독이 '얼굴'을 2억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만약 '부산행'이라면 그렇게 찍겠다고 못 하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얼굴'과 같은 스토리나 기획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보고 싶다. 다만 그런 작업을 하려면 배우와 스태프에게 사정해야 한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연상호 감독이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얼굴'의 성공은 분명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관객 100만 명을 모으기조차 쉽지 않은 지금, 제작비 100억원 수준의 영화들이 마오고 있다 이런. 이런 상황에서 2억 원으로 8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얼굴'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이긴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성과를 곧바로 충무로의 대안 모델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연상호 감독이라는 특수한 입지, 배우·스태프들의 출연료 포기와 지분 참여, 메이저 배급사의 지원 등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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