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폐지됐다. 2014년 시장 과열과 구매자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이후 11년 만이다. 기존 이동통신사에게 의무적으로 제한됐던 15%의 '지원금 상한'이 없어졌다. 이동통신사와 유통점 등이 자율적으로 지원금 규모를 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시지원금 액수를 공지해야 하는 의무, 유통점의 추가지원금 제한 또한 사라졌다.
단통법 없어졌는데, 시장은 외려 조용
이전부터 단통법이 폐지되면 과거 존재했던 '공짜폰' 등 이통업계 마케팅 과열이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폐지 첫날 시장은 의외로 고요했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이동통신사들이 폐지 직후 보조금 규모를 기존 대비 올리지 않은데다 유통점에서 제공하는 추가지원금 규모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22일 SK텔레콤에서 삼성 갤럭시 Z 폴드7 512GB 모델을 구매하면 보조금과 유통망 추가지원금을 받아 약 54만원 기기값을 할인받을 수 있다. 9만원 요금제를 6개월간 유지하는 것이 조건이다. KT 또한 6개월 고가 요금제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동일 모델을 약 57만원 할인해준다. 이는 모두 단통법 폐지 이전과 비슷하거나 동일한 규모의 지원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는 선착순 개통 인원에 단말기 추가 할인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크게 단말기 가격을 낮추지는 못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업계 1위 SK텔레콤이 공격적으로 지원금 마케팅을 펼치지 않자 함께 '숨고르기 중'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해킹 사고로 60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가 빠져나간 SK텔레콤이 예상 외로 지원금 경쟁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며 "지원금 규모가 시장 분위기를 보고 정해지는 만큼 당장 지원금을 크게 올리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이전부터 이통사들은 갤럭시 시리즈나 아이폰 신규 모델 출시 시점에 맞춰 가장 크게 보조금을 시장에 푸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3사 모두 "시장 수요와 경쟁사의 분위기를 본 뒤 지원금을 조정하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SK텔레콤의 위약금 면제와 갤럭시 Z 폴더블 7 시리즈의 사전예약이 있었던 만큼 단통법 폐지에 맞춰 대규모 지원금을 풀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단통법이 폐지된 이번 주 주말이 진짜 승부처"라며 "이통3사가 모두 주말 사이 이동하는 가입자 규모를 보고 내주 지원금 상향 등 조정에 나서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1년 전 '공짜폰'? 이젠 옛말
11년 전 ‘공짜폰’ 등 출혈경쟁도 어렵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시장 상황이 당시와 180도 달라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단말기의 선택 폭이 줄어든데다 휴대폰이 고가품이 되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과거에는 초고가 모델이 90~100만원을 호가했던 반면, 이번 갤럭시 폴더블 7 시리즈는 모델에 따라 기기값만 200만원이 넘는다. 유통점에서 보조금과 추가지원금 등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공짜'까지 휴대폰 가격을 떨어뜨리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휴대폰 가격이 오름에 따라 교체주기가 길어졌다는 것도 출혈경쟁이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단순 지원금 규모만 보고 고가의 단말기를 자주 바꾸는 이용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통사들은 단순 지원금 출혈경쟁으로는 신규 이용자를 끌어오기엔 역부족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단통법 폐지와는 관계없는 ‘선택 약정 할인’을 택하는 이용자도 많다. 지원금을 받는 대신 매달 요금에서 25%를 할인받기를 선택하는 이용자의 비율이 늘며 실제 추가지원금을 선택하는 수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중고폰 시장의 확대와 알뜰폰, 자급제 단말기 등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굳이 이통사 대리점을 이용하지 않고도 휴대폰을 쉽게 개통할 수 있다"며 "이통사 간 외에도 외부에 경쟁자가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