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군용기 유지·보수·정비(MRO) 위탁 정책을 통해 한국 등 동맹국과 협력을 확대할 것입니다.”
황중선 네덜란드왕립항공우주센터(NLR) 수석 연구개발(R&D) 엔지니어(사진)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항공 MRO를 앞세운다면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물론 글로벌 항공·우주·방산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비(Maintenance)’, ‘수리(Repair)’, ‘분해조립(Overhaul)’을 의미하는 항공 MRO는 항공기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시스템이다. 네덜란드에서 항공 MRO를 비롯해 모빌리티, 공정 자동화를 연구하는 황 엔지니어는 “항공 MRO는 고장을 사전에 예방하고 무기 체계의 가동률을 높이는 미래의 핵심 국가 안보 분야”라고 밝혔다. 그는 “항공 MRO는 국방 부품 공급망을 사전에 관리하고 수명주기 전반에 걸쳐 재고 비용과 가동률까지 최적화하는 고도의 안보 작업”이라고 항공 정비 예측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항공 MRO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 그는 한국이 이 분야의 주도권을 반드시 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무자문 기업 삼정KPMG는 글로벌 항공 MRO시장 규모가 2023년 939억달러(130조원)에서 2033년 1253억달러(175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내 시장은 2013년 2조5000억원에서 올해 4조2000억원으로 68% 증가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해 정책 지원이 시급하단 주장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네덜란드에서 거주한 황 엔지니어는 네덜란드 명문 델프트 공대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기술공학 명문 트벤테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2009년부터 NLR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네덜란드와 한국 간 항공우주 협력을 이끌었다. 1919년 국립항공우주국(RSL)에서 출발한 NLR는 700명 이상의 전담 전문가를 통해 전 세계 주요 항공우주 산업을 지원하는 곳으로, 2019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왕립 칭호를 수여 받았다.
황 엔지니어는 한국이 2045년까지 세계 5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다국적 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이 이 분야의 후발주자임에도 빠르게 기술 발전 등을 이뤘지만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독자적 행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유럽우주국(ESA)을 중심으로 국가 간 역할을 분담하며 강력한 연합 구조를 구축해 온 다국적 협력 생태계를 한국이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이기도 한 황 엔지니어는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내 한국인 과학기술 연구원 및 엔지니어, 유학생들이 한국-유럽 간 과학기술 협력의 가교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델프트 공대에만 한국인 교수 6명이 활동하는 등 네덜란드 내 한인 과학기술자 커뮤니티가 커졌고 한국인 유학생 유입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다른 유럽권 국가들에 비해 네덜란드는 영어가 잘 통하고, 학비도 비싸지 않아 유학생에게 매력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그는 국제 과학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논문이나 특허 수 같은 결과 중심의 연구가 많은 점은 한계라고 지적했다.
황 엔지니어는 “네덜란드의 연구 시스템의 강점은 ‘실패를 허용하는 환경’이 잘 마련됐다는 점”이라며 “실패해도 개인이 파산하거나 도태되지 않고 다음 연구로 이어지는 선진 연구 시스템이 한국에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