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4일 제21대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은 주권자인 국민이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새 대통령은 산업 현장을 중심축인 40~50대 연령층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진보 진영 출신 대통령 중 가장 높은 49.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는 이념에 치우지지 않는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어 산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업계는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가 더욱 크다. 대통령 후보 시절 발표한 10대 공약 중 1호 공약이 'AI를 기반으로 한 경제 강국' 도약이기 때문이다. 그는 AI 분야 100조원 투자를 약속했으며, AI 고속도로 구축과 고성능 GPU 5만개 확보, '모두의 AI' 프로젝트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쉽지 않은 약속들이지만,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의 행정력과 실행력을 기억하는 이들은 공약의 이행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공약 이행을 위한 국정과제를 검토하겠지만, 필자는 새로 출범하는 이재명 정부에 다음의 AI 정책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하길 당부한다.
첫째, 국가 AI 정책 추진을 위한 거버넌스 재정립이 요구된다. 기존 정부에서도 AI 강국 도약을 위한 정책과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거버넌스의 제약으로 인해 실행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무부처로 역할을 했지만, 범 부처에 산재해 있는 AI 정책을 총괄하기엔 통솔력이 부족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가 발족했지만, 위원회 조직이 가지는 한계로 인해 속도와 장악력 측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위원회가 실무형 전문가가 아닌 덕담을 해 주시는 원로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국가 CAIO(Chief Artificial Intelligence Officer:최고인공지능책임자)로서 대통령비서실 내 AI정책수석 신설을 약속했다. 그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물인 동시에 디지털,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잘 조율할 수 있는 인물로 임명되어야 한다. 동시에 국가AI위원회의 개편과 역할 강화는 실질적인 국가 AI 컨트롤타워로서 거듭나기 위해 필수적인 조치다. 더불어 정부 조직개편 시 AI 업무를 총괄할 부총리급 정부부처의 탄생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인공지능기본법의 하위 법령 신설과 정비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 국가 차원에서 AI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고성능 GPU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외교력을 동원해 선제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공약에서 5만개의 GPU 확보를 약속했지만, 산업계는 더 많은 수량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고성능 GPU를 AI 산업 발전을 위한 필수 공공재로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확보, 공급에 나서야 한다. AI 핵심 인재들이 국내에서 마음껏 개발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R&D 환경 또한 조성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GPU 부족으로 해외 취업을 고민하거나, 정전 우려에 AI 인프라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해선 안 된다.
더불어 AI 산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사회간접자본(SOC:Social Overhead Capital)인 데이터센터의 신설과 확충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민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데이터센터 시설 투자 시 최대 30%까지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반도체 시설에 준하는 파격적인 수준의 세제 혜택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데이터센터 신설을 위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인허가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산업별 AI 전환(AX:AI Transformation)을 위한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 거대언어모델(LLM)을 중심으로 한 생성형 AI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조, 유통, 금융, 헬스케어 등 산업 내 AI 적용과 확산이다. 이를 위해서는 에이전틱(agentic) AI와 피지컬(physical) AI 개발 기업의 육성과 산업 별 실증 프로젝트를 통한 성공사례 확보가 절실하다.
이제 AI 산업을 소프트웨어(SW) 개발 중심의 협의의 AI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AI는 모든 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핵심 도구이자, 산업 간 융합과 신산업의 지평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넷째, AI 인재 양성 정책의 전환이 요구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차기 정부의 공약집에 AI 핵심인재 100만명 양성과 같은 허황된 구호가 없다는 점이다. AI 개발에서 필요한 인재는 미국, 중국의 빅테크와 경쟁할 국가대표급 AI 핵심인재다. 구체적 실행 방안 없이 다수의 탑티어(top-tier)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발언은 실효성 없는 구호에 가깝다.
더불어 모든 계층과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국민이 AI 도구에 쉽게 접근하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두의 AI' 구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AI에 대한 이해와 AI 도구 활용을 위한 AI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AI 시대엔 기존 디지털 소외 계층이 겪었던 디지털 디바이드와 사회 양극화 현상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모든 국민이 AI 활용에 있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AI 기본사회' 구현이 필요한 이유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으로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룩한 것처럼, 이재명 정부가 AI 대전환을 통해 침체된 한국 경제를 되살리고,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황보현우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