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편하게 펀(Fun)하게 통하게

1 month ago 14

[한경에세이] 편하게 펀(Fun)하게 통하게

소통의 달인, 유머라는 제시어로 인물 퀴즈를 진행하면 가장 많이 떠올릴 사람은 단연 유재석일 것이다. 국민 MC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그는 상대의 말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맞장구와 호응으로 마음을 풀어주며, 대화가 지루해질 즈음 적절한 유머로 웃음을 건넨다. 그래서 그의 대화는 늘 편안하다.

가끔 집에서 TV 리모컨을 돌리다가 그가 진행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 앞에서 채널을 멈추게 된다. 소소하고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부터 말하기 어려운 고민까지 출연자들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충분히 그렇게 느낄 만하네요” “어휴, 내 속이 다 터진다”는 그의 말 한마디는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당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이어 “그럼 앞으로 가장 기대되는 일이 뭐죠?”처럼 따뜻한 질문을 던지며 공감대를 쌓는다. 대화의 힘으로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누구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해결하기 어려운 고충 때문에 화난 민원인부터 수해로 큰 슬픔에 빠진 이재민, 관악산 황톳길을 걸으며 활짝 웃는 주민까지. 구청장으로서 상대의 감정과 의견을 이해하고 온전히 들어주는 게 참 어렵다고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일까, 유재석의 경청과 공감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고, 재치 있는 한마디로 웃음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민선 7기 취임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관악청’의 문을 열었다. 이곳의 ‘청’은 ‘관청 청(廳)’이 아니라 ‘들을 청(聽)’이다. 주민 누구든 찾아와 담소도 나누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했다.

운영을 거듭할수록 깨닫는 건, 누군가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는 것보다 진심 어린 경청이 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이해와 설득’보다 ‘공감과 위로’가 더 절실하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진심으로 귀 기울이면 마음을 얻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지난 26일 관악청 7년을 돌아보며 그간 희로애락을 함께한 주민 150여 명을 초대했다. 뿌듯하면서도 ‘더 많이 들어주고 해결했어야 하는데’라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즐겁고 풍성한 추석 연휴가 코앞이다.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는 명절 자리에서 “결혼은 언제 하니?” “밥벌이는 잘되냐?” “나 때는 말이야” 같은 꼰대 같은 말보다 그저 차분히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더 풍성한 선물일 것이다.

문득 예전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달인’이 떠오른다. 무대 위에서 이런 소개를 받는 상상을 해본다. “시청자 여러분, 구의원 8년, 시의원 8년, 구청장 8년, 무려 24년 동안 구민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위트 있는 말 한마디로 상대의 호감을 잔뜩 털어오신 관악의 대표 일꾼, ‘소통’ 박준희 선생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웃음과 박수 속에서 서 있는 내 모습이 그려지자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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