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브랜드들을 대상으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사업을 운영하다 보니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다. 비행 중에는 넷플릭스를 켜곤 한다. 머리를 식히는 동시에 산업과 문화의 흐름을 살피기에도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화면 속에는 이제 해외에서도 이미 친숙해진 K컬처의 장면들이 이어진다. K팝과 K드라마,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K푸드, 유튜브와 SNS를 통해 확산되는 K뷰티까지…. 여러 영역이 나란히 성장해 온 모습을 보다 보니 문득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K패션에만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음악과 영상, 음식과 뷰티 산업은 관련 법을 토대로 산업적 기반을 다져왔지만, 패션은 이를 종합적으로 뒷받침할 제도적 토대가 여전히 부족하다.
국내 패션산업은 연간 약 85조 원 규모의 내수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3만4000여 개 사업체와 14만 명의 직접 종사자를 포함해, 연관 산업까지 합치면 44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다. 외형만 놓고 보면 이미 성숙 단계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규모는 일부 유관 기관과 수많은 기업, 그리고 종사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온 결과에 가깝다. 필자가 현장에서 체감해 온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과정에서 산업 전반을 끌어올릴 구조적 성장 동력이나 세계를 대표할 K패션 기업이 탄생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해 왔다.
대중문화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통해 인력 보호와 산업 질서를 정립해 왔고, 식품은 ‘식품산업진흥법’을 바탕으로 연구개발과 수출 경쟁력을 키워왔다. 뷰티 역시 ‘화장품법’을 중심으로 품질 관리와 글로벌 신뢰를 제도적으로 확보해 왔다. 각 산업은 성장 과정에서 겪는 불확실성을 법과 정책이라는 토대 위에서 줄여 오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지난해 2월, ‘패션산업진흥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 법은 패션을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유통과 해외 진출까지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첫 제도적 기반이다. 흩어져 있던 역량을 연결하고, 개별 기업의 성장을 시스템에 기반한 산업 전반의 성장으로 확장하기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달 24일, 국회에서는 ‘K패션 글로벌화’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과제를 모색하고, 해외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를 두고 국회의원은 물론 관계자를 비롯한 학계·업계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패션을 단순한 소비재 산업이 아닌, 국가 문화 산업이자 전략 산업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점차 공론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흐름이다.
K컬처의 다른 영역들이 그러했듯, 산업의 지속적인 도약은 현장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과 정책이 함께할 때 가능해진다. 이제는 규모에 걸맞은 제도적 토대를 바탕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대표 기업의 탄생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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