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승부는 커브 구간에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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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승부는 커브 구간에서 난다

동계올림픽 종목 중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레이스는 루지다. 썰매에 누워 얼음 트랙을 내려오는 루지는 최고 속도가 시속 150㎞를 넘어 ‘빙판 위 F1(포뮬러원)’으로 불린다. 루지는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다른 썰매 종목과 달리 1000분의 1초까지 따져 순위를 가린다. 미세한 움직임 하나가 경기 결과를 가른다.

체격과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각국 선수들의 승부는 코스 곳곳에 배치된 커브 구간에서 결정된다. 각 커브의 기울기와 꺾임에 맞춰 최적의 진입 라인을 선택해야 한다. 트랙 안쪽을 파고들어 최단 거리로 빠져나가는 ‘인코스 전략’과 감속을 최소화하며 길게 돌아나가는 ‘아웃코스 전략’ 중 하나다. 기록이 뒤처진 선수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커브 바깥쪽인 아웃코스뿐이다. 더 긴 거리를 주행해야 하지만 원심력을 이용해 속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어지는 직선 구간에서 추월의 동력을 얻는다.

AI 대커브 구간 들어선 세계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커브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모든 것이 AI와 결합하는, 말 그대로 AI 시대가 열렸다. 반도체, 로봇, 에너지, 국방 등 AI와 맞물린 핵심 산업의 패권을 놓고 각국은 루지 경기의 코너링처럼 숨 가쁜 경쟁을 벌이고 있다. AI 원천기술 분야에선 미국과 중국이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를 앞세워 이미 가장 짧고 효율적인 인코스를 선점했다. 무모한 전면전은 승산이 없다. 속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반격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아웃코스 전략을 짜야 할 때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조 인프라에 AI를 결합하는 ‘산업 AI 대전환(AX)’ 영역은 우리가 승부를 걸어야 할 분야다. 공정 자동화, 로보틱스, 스마트팩토리 등 우리가 축적해온 산업 역량 위에 AI의 가속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과 해당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AI 대전환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기에 이를 AI 정책의 최우선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축적한 데이터와 도메인 노하우 기반의 산업별 특화 AI 에이전트 개발이 대표적이다.

제조 AX로 한발 앞서나가야

AI 강국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개 확보,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 한국형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 10만 명 인재 양성 같은 목표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 역량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다.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우선돼야 한다.

제조산업 현장에 뿌리내린 ‘제조 특화 AI’로 차별화한다면 AI 시대에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기존 산업 패러다임이 흔들리는 지금은 국가 경쟁력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변곡점이다. 정부의 산업 전략 역시 정교한 판단과 유연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거대한 AI 커브를 어떻게 돌아나가느냐에 따라 다음 직선 구간을 치고 나갈 속도가 달라진다. 지금의 선택이 격차를 만들고, 그 격차가 질서를 바꾼다. 무한경쟁 시대,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AX 모멘트에 뒤처지면 K제조업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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