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5월,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보내준 전용기를 타고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는 백악관 마당에서 존슨과 함께 14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베트남전 파병 확대와 한·일 국교 정상화 지지, 주한 미군 행정협정(SOFA), 경제개발 차관 등 향후 한국의 외교·안보와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역사적 성명문이었다. 그 말미에는 미국이 한국의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존슨이 파병 사례로 도서관이나 병원 건립을 제안했으나, 박정희는 과학기술연구소 지원을 끈질기게 요청했다. 방미 한 달 전 일이다. 정부 산하 연구소장들을 부른 자리에서 박정희가 경공업 수출 실적을 자랑하자 최형섭 원자력연구소장이 “계집애들 머리카락 팔아 번 돈이 뭐 그리 자랑스럽습니까”라고 해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식었다. 박정희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그럼 우리가 뭘 팔 수 있어?”라고 하자 최 소장은 “일본은 전자제품 수출만도 10억달러가 넘는다”며 기술연구소 설립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에서 받은 1000만달러에 우리 정부가 1000만달러를 더해 세운 국내 첫 정부출연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그렇게 탄생했다. 60년 전인 1966년 2월 10일 서울 청계천6가 한일은행 건물의 10평 사무실에서 시작했다. 이후 연구원이 들어선 서울 홍릉은 명성황후의 묘가 있던 곳이다. 일제에 의해 시해된 국모가 묻힌 자리에서 대일본 기술 추격전에 나섰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최형섭 초대 원장의 운영 지침은 ‘인재’와 ‘산업화 기술 개발’ 두 가지다. 당시 국내에 없던 의료보험에 주택 제공, 국내 교수 4~5배 봉급 등으로 해외한인 과학자들을 유치했다. 미국 부통령의 표현대로 “세계 최초의 역(逆)두뇌유출”이다. 개발 단계부터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 연구에 주력했다. 포항제철소 기본 계획부터 컬러TV 방송 기술, 아라미드 섬유, 프레온가스 대체 물질 등이 그렇게 해서 나왔다. 최 원장의 묘비 글 중 일부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돼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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