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치열한 무역·기술 패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의 최근 경제 정책은 한 가지로 요약된다. 민영 기업 주도 성장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영 기업 주도 성장을 표방한다는 게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 그렇다. 올해 들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각 부처 고위 관료들이 민간 산업 현장을 방문하면 항상 기업에 묻는 것이 있다. 불필요한 규제와 혁신을 위한 정부 지원책이다.
민영 기업 주도, 체질 개선
중국 정부는 지난달 ‘중국 특색의 현대 기업 제도 완비에 관한 의견’을 공개했다. 19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의견서는 혁신 장려 제도와 임금 인상 메커니즘 완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혁신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한다.
지난달 20일 시행된 민영경제촉진법과 맥을 같이한다. 민영경제촉진법은 중국에서 민영 기업의 권익과 사업을 보호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첫 법률이다. 중국은 시 주석 2기인 2022년까지 분배를 강조하는 공동 부유와 민영 기업을 통제하고 국유 기업을 강화하는 경제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영 기업은 혁신 대신 부동산 투자 등에만 골몰했고, 중국 내 빈부격차는 오히려 커졌다. 이 때문에 2023년 시 주석 3기 체제 출범 이후 중국 정부는 경제 노선을 과감하게 바꿨다.
경기 둔화 극복과 인공지능(AI), 로봇 등 첨단 기술 분야 발전을 위해선 민간 영역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인 셈이다. 민영 기업이 성장해야 고용도 살아난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고율 관세와 기술 제재로 대중 압박 수위를 높이는 미국을 보면서 민영 기업 위상이 국력을 좌우한다는 사실도 절감했다. 미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중국의 든든한 ‘뒷배’가 돼준 건 다름 아닌 민영 기업이었다.
'기업 성장=국력' 확신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AI 분야에서 중국을 한층 옥죄기 위해 엔비디아, 인텔 등의 첨단 반도체에 대한 대중 수출을 금지했지만 중국은 화웨이를 선두로 자체 AI 반도체를 내놓으며 미국의 제재를 돌파하고 있다. 전기차(BYD), 전기차 배터리(CATL), 태양광(론지솔라), 드론(DJI) 등에선 이미 중국 기업이 세계 1위에 올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공급망 저력을 갖췄다. 휴지기에 접어든 관세 전쟁 속에서도 중국이 민영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지원할 수 있도록 시장 진입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관련 규정을 재정비하는 데 분주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제 중국은 발 빠르게 향후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과거와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과거엔 정부가 전략 산업을 짜면 기업이 일방적으로 따르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정부가 ‘판’만 깔아주고 민영 기업이 경쟁하면서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하는 방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중국 제조 2035’를 통해 반도체·로봇·바이오 산업에서 기술 자립을 달성하고 표준을 선도해 글로벌 산업 지형을 재편하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의지다.
중국이 큰 보폭으로 반도체 등 얼마 남지 않은 한국의 주력 산업마저 추격해올 동안 한국은 얼마나 질주해왔나. 장기 집권 체제인 중국이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한국의 향후 10년이 너무 위태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