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배우인 줄 알았는데…류승범에 대한 오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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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배우인 줄 알았는데…류승범에 대한 오해 [인터뷰+]

날것의 본능으로 관객을 사로잡던 류승범이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를 통해서다.

2019년 '타짜: 원 아이드 잭' 이후 7년 만의 장편 복귀다. '인질'(2021)에 우정출연하고, 드라마 '무빙'과 '가족계획'을 통해 얼굴을 비췄지만 본격적인 영화 출연은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는 접해보지 못했다"며 "새로운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그가 '굿뉴스'를 택한 이유다.

'굿뉴스'는 1970년대 실제 비행기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이름도 출신도 베일에 싸인 해결사 '아무개'(설경구)가 중앙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의 명령을 받아 비밀 작전을 꾸미는 가운데, 엘리트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이 납치범을 속이고 여객기를 되찾는 임무를 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변성현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과 시대 풍자가 더해졌다.

류승범은 이 작품에서 중앙정보부장 박상현 역을 맡았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냉철함과 위트를 동시에 지닌 캐릭터다. 성공하면 내 덕, 실패하면 남 탓이라는 태도로 주변 인물들을 조종하는 권력형 인간. 하지만 류승범은 그를 단순한 악역이 아닌, 시대의 어두운 욕망이 투영된 인물로 그렸다.

그는 "1970년대 정보부장은 개인적으로 먼 인물이었다. 실제로 접해보거나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중간 지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너무 가짜로 느껴지지 않게, 또 리얼리티에만 매달리지 않게, 영화적인 틀 속에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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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과정은 예상보다 치열했다. 그간 '날것의 배우'로 불렸던 류승범은 오히려 철저히 탐구하고 준비하는 타입이었다. "대본을 계속 탐구하면서 여러 번 읽어도 새롭더라고요. 한 번, 두 번 읽을 때랑 달랐어요. 여러 번 읽으면 못 봤던 게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걸 느낀다. 그러다 보면 메모가 쌓이고, 그게 내 안에 남아요."

그러면서 그는 "촬영도 즐겁지만, 탐구할 때가 더 열려 있는 시간이다. 잡생각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시간이라 개인적으로 제일 좋다"고 귀띔했다.

이번에 류승범은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굿뉴스'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충청도 사투리가 떠올랐습니다. 언어의 특성이 주는 이중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겉으로는 느긋하지만, 속은 다르게 움직이는. 그게 캐릭터와 어울릴 것 같았죠. 사투리를 쓰면 인물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류승범에게 이번 영화는 변성현 감독과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동갑내기 감독을 만난 건 처음이었어요.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묘한 연대감이 있었죠. 첫 만남엔 시나리오 받고 저녁을 먹었고, 두 번째 만남엔 거절을 했는데 변 감독이 12시간 동안 안 가더라고요. 사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이야기 나누다 보니 출연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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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의 경험은 신선했다. "감독님은 굉장히 감각적인 사람입니다. 현장 세팅할 때 오아시스 음악을 틀기도 하고, 우리 세대 감성을 공유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틀을 깨려는 시도, 새로운 걸 해보려는 자세가 자극됐습니다."

15년 전 '용서는 없다'에서 호흡을 맞췄던 설경구는 류승범에 대해 "품이 넓게 바뀌었다"며 "예전에 날 것 같고 호불호가 강했다면 지금은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사람으로, 멋지게 변했다"고 말했다.

이에 류승범은 "제가 감히 설경구 선배와의 호흡을 얘기할 만한 존재는 못 되는 것 같다"며 "선배와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뜻깊고 기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배우들과 작업할 때 생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직접 부딪히니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연대감이 있다고 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에너지 플로우'가 통하니까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고 긴장감이 내려가고 무의식적으로 의지가 되는 경험을 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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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5년 차를 맞은 류승범은 연기에 대한 목마름보다 호기심과 애정이 커졌다고 했다. "20대 때는 그 나이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을 했다면, 지금은 또 다른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을 탐구하고 표현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죠. 이 일은 사람에 대해 표현하는 거라는 생각을 한동안 했습니다."

그는 2012년부터 해외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베를린과 뉴욕을 거쳐 파리로 옮겼고, 2019년에는 슬로바키아 출신 화가와 결혼해 그해 중순 득녀 소식도 전했다. 가족은 그를 변화시킨 가장 큰 이유였다. 류승범은 오랜 공백 갖다가 연기 활동을 재개한 이유에 대해 "그저 연기가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호기심을 갖게 됐고, 내 마음이 이끌었던 것 같아요. 다섯 살인 딸이 내가 배우라는 건 아는데 어떤 건진 몰라요. 제 필모를 볼 수도 없죠.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딸이 볼 수 있는 작업도 할 수 있으면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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