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관심이 높다 싶은 사건은 다 서울경찰청으로 넘기니 기존에 수사하던 사건은 챙겨보기도 어렵습니다.”
최근 만난 서울경찰청 소속 한 경정급 수사관에게 들은 이야기다. 법과 원칙이 아니라 여론에 따라 사건의 경중이 좌우되는 경찰 조직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최근 논란이 된 이른바 ‘홍명보 사건’이 대표적이다. 2024년 7월 한 시민은 이임생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를 업무방해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고발했다.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이 전 이사가 축구협회 정관과 국가대표팀 운영 규정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경찰이 1년 넘게 처분을 미루자 고발인은 지난해 9월 수사심의까지 신청했다. 수사심의는 수사 과정의 불공정·부적법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다. 수사심의를 다루는 수사심의위원회는 이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경찰은 신속 통보 이후 9개월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사건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축구 국가대표팀이 북중미 월드컵에서 조기 탈락한 이후다. 국회가 대한축구협회를 상대로 청문회를 추진하는 등 정치권의 질타가 이어지자 경찰은 부랴부랴 해당 사건을 서울청 광역수사단 산하 금융범죄수사대로 이첩했다.
이첩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은 작지 않다. 초기 수사를 담당하던 경찰서가 일정 부분 진척을 이룬 상황에서 사건을 넘기면 서울청은 사건을 재구성하고 파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시간과 인력이 이중으로 투입되는 셈이다.
주요 사건이 서울청에 집중돼 병목현상이 벌어지고, 이 때문에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은 이춘석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8월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엄정 수사를 예고했지만, 검찰 송치까지 4개월 이상 걸렸다. 더욱이 핵심 혐의인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정보 이용 등 상당수 혐의는 불송치했다. 지난 1월에도 86명 규모의 쿠팡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개인정보 유출, 산업재해 은폐 의혹을 집중 수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여론은 중요하다. 그러나 수사의 기준이 되면 안 된다. 경찰이 지켜야 할 것은 여론의 방향과 크기가 아니라 법과 원칙이다. 지금처럼 사건의 무게가 ‘관심도’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결국 수사 신뢰도가 하락하고 국민 권리가 침해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사건을, 어떤 조건에서, 어떤 절차로 이첩할 것인지에 관한 체계적 정비가 필요하다. 여론이 아니라 원칙이 작동하는 수사 구조가 자리 잡아야 경찰이 더욱 신뢰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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