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맹탕 재정준칙' 우려 키우는 새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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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맹탕 재정준칙' 우려 키우는 새 정부

“재정준칙 법제화를 접을 계획은 없지만, 톤을 낮출 필요는 있습니다.”

‘재정준칙’을 둘러싼 재정당국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한다’는 정부의 기존 기조가 후퇴할 조짐을 보여서다.

논란은 지난 18일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의 추가경정예산안 브리핑에서 불거졌다. 그는 “GDP 대비 3% 재정준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실현 가능성을 재평가하겠다”고 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재정준칙 법제화를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공언하던 기재부의 메시지가 급격히 달라진 것이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2차 추경안에서도 이런 변화가 감지된다. 1차 추경안에는 포함됐던 “재정 운용의 기본 원칙인 재정준칙 법제화를 지속 추진하겠다”는 문구가 이번에는 아예 빠졌다. 재정준칙을 전면 재검토하려는 기재부의 의중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2차 추경에 따라 올해 말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GDP 대비 4.2%까지 확대된다. 재정준칙의 상한선(3%)을 1%포인트 넘기게 되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잠재성장률 하락과 경기 하강 흐름에 맞춰 재정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며 “현재의 재정준칙을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경제와 재정 운용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시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재정준칙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진 않다. 하지만 한 번 고삐가 풀리면 재정 운용이 과도하게 느슨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처럼 이재명 정부도 ‘맹탕 준칙’을 다시 꺼내 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재정준칙의 기준을 관리재정수지가 아니라 통합재정수지로 설정해 ‘헐겁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합재정수지는 전체 재정의 수입과 지출 간 차이를 말한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뺀 수치가 관리재정수지다.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폭이 통합재정 수지보다 크다. 그래서 재정건전성을 더 명확히 판단할 때는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쓴다. 문재인 정부 기재부는 한발 더 나아가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 중 하나만 충족하면 되는 ‘혼합형 준칙’까지 추가해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재정준칙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정부가 국민과 시장에 약속하는 ‘신뢰의 기준’이다.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재평가를 하더라도 ‘맹탕 준칙’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는 일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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