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 장벽에 막힌 K톡신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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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규제 장벽에 막힌 K톡신 수출

“K규제가 K톡신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보툴리눔 톡신(보톡스) 수출을 준비하고 있는 국내 중견 제약사 회장이 최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계 시장을 선점하려면 하루가 급한데 수출 허가를 받기까지 최장 6개월이 걸린다”며 “업계가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지만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기업이 보톡스를 수출하려면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보톡스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최소 4개월이 소요된다. 용량 등이 다른 신제품을 수출할 때도 새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업계는 허가 절차에 따른 수출 지연으로 발생한 손실을 연간 9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보톡스 수출액이 3억6600만달러(약 5400억원)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정부는 2010년 보톡스 생산 기술에 이어 2016년에는 균주 자체를 국가핵심기술에 포함시켰다. 75개 국가핵심기술 중 기술이 아닌 유형물이 지정된 사례는 보톡스 균주가 유일하다.

국가핵심기술은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전 보장과 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뜻한다. 보톡스는 1950년대부터 논문과 특허를 통해 공정 대부분이 공개돼 있다. 미국 제임스마틴비확산연구센터(CNS)는 2010년 보고서에서 “생물학 학사에 준하는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공개 정보를 이용해 (보톡스를 생산 가능한) 실험실을 만들 수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한국 외에 원조국인 독일과 미국을 비롯해 중국 프랑스 러시아 이란 인도 등 14개국 50여 개사가 보톡스를 생산·판매 중이다. 보톡스 균주도 해외 기관을 통해 구매할 수 있고 상업적 매매도 활발하다. 국내 보톡스 기업 이니바이오는 스웨덴의 미생물 분양 기관에서 보톡스 균주를 확보했다.

보톡스가 테러에 악용될 우려가 높은 독성 물질인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보톡스는 산업기술보호법 외에 생화학무기법, 대외무역법 등 다양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국가정보원은 주기적으로 생산 시설을 점검한다. 미국 독일 중국 등 보톡스를 생산하는 대부분 국가도 전략물자로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국가핵심기술로 규제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보톡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64억9000만달러에서 2029년 101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뒷짐 지고 있는 사이 국내 보톡스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산업기술을 보호한다는 법이 산업의 발목을 잡는 K규제를 하루빨리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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