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 피자지수(The Pizza Meter)’라는 말이 있다.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거나 미국의 중대한 군사·외교적 결정이 임박했을 때 국방부(펜타곤) 인근 피자 매장의 심야 배달 주문량이 급증하는 현상에서 유래했다. 긴박한 상황이 닥치면 고위 관료와 정보요원들이 퇴근을 미룬 채 밤샘 작업을 이어가고, 이들이 팀 단위로 가장 간편하게 시켜 먹을 수 있는 야식이 피자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다. 정부 공식 발표보다 한발 빠르게 비상시국임을 알려주는 생생한 지표인 셈이다.
1990년 걸프전 직전과 1991년 옛 소련 쿠데타(8월 쿠데타) 당시 펜타곤으로 향하는 피자 배달 오토바이가 줄을 이으면서 정보기관조차 “비밀 유지가 안 된다”고 우려했을 정도였다. 올초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습할 당시와 지난 2월 28일 이란전 발발 때도 피자지수는 급등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지역 경기와 기업 활력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피자지수가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도미노피자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반도체 공장이 있는 경기 화성시 동탄과 이천시 지역의 지난 3월 피자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0%, 34% 급증했다. 지난 1분기 역대 최대 매출(분기 기준)을 올린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울산 역시 피자 매출이 20% 늘었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여의도 피자 주문량이 평월보다 45% 폭증하기도 했다. 반도체·자동차 산업 호황과 국회 의정활동 등이 ‘한국판 피자지수’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피자 냄새가 짙어진다는 것은 일터가 그만큼 바쁘게 돌아간다는 증거다. 정부는 최근 ‘메가특구특별법’에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예외 조항을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한 첨단 반도체 등의 분야에 획일적 노동 규제를 적용해 연구개발(R&D)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일 것이다.
국가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에 근무 유연성 확대는 필수나 다름없다. 연구실로 향하는 따뜻한 피자 상자가 늘어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 멈추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안정락 논설위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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