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현인의 얼굴을 한 워런 버핏과도,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을 내릴 것 같은 조지 소로스와도 다르다. 이들과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나비넥타이를 즐겨 매고 80대의 나이에도 늘 호기심과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눈을 빛낸다. 전설적인 투자가라기보다 몽상가의 얼굴에 가깝다. 실제로 그는 38세 때 오토바이와 개조한 자동차를 타고 세계일주를 한 여행가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 투자은행에서 만난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공동 설립한 로저스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8년간 420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달성했다. 그 기간 S&P지수 상승률은 47%였다.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지만 여행은 그에게 세계를 무대로 투자 대상을 발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가 ‘금융계의 인디애나 존스’라고 불리는 이유다. 로저스는 자신의 투자를 ‘전 세계에 사는 사람과 늘 지혜를 겨루는 일’이라고 규정했는데 월가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고 세계를 투자 대상으로 삼은 그의 시야를 보여준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21세기 후반은 아시아와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며, 통일 한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라고도 했다.
한국의 미래를 밝게 보는 지한파인 셈이다. 하지만 대선 막판에 논란거리로 등장한 그의 이름은 ‘아니면 말고’와 사대주의에 빠진 우리 정치 현주소를 보여준다. 로저스가 이재명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는 더불어민주당의 발표와 달리 한경에 보낸 그의 답신은 “내 이름이 이런 식으로 사용되지 않길 바란다”였다. 국민의힘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대선 후보 사퇴까지 요구했다. 로저스 같은 투자가가 특정 국가의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설혹 지지를 표했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자랑할 일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로저스의 메시지 제목을 ‘한반도의 평화와 기회’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이재명 후보 지지’로 제멋대로 바꾸고 ‘그래서 지금은, 선택은 이재명이다’ 같은 문장을 임의로 추가했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