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성과급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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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05 17:41 수정2025.09.05 17:41 지면A23

국내 기업에 성과급 문화를 정착시킨 사람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2001년 PS(초과이익 분배금) 제도를 도입하면서다. “이 세상에 공짜도 없고, 거저 되는 것도 없다”고 한 이 회장은 칭찬은 입이 아니라 지갑으로 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다. 이 회장은 인센티브를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했다.

[천자칼럼] 성과급 전쟁

그 위대한 발명품이 요즘 한국 기업 경영진의 최대 고민거리로 변했다. 반대로 조금만 홀대받는다는 생각만 들어도 엉덩이가 들썩이는 MZ세대에게는 직장생활의 최대 쟁취물이 됐다. 최근 성과급 논란은 대학생 취업 선호도 1위 SK하이닉스가 지속해서 주도하고 있다. 2021년 1월 입사 4년 차의 SK하이닉스 한 직원이 당시 이석희 사장과 전 임직원에 보낸 이메일에서 “삼성만큼 임금·성과급을 챙겨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으십니까”라며 PS 산출 방식 등에 대해 공개 해명을 요구했다. 최태원 회장까지 나서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연봉 30억원을 모두 내놓겠다고 했으나 ‘SK재난지원금이냐는’ 비아냥을 들으며 결국 성과급 산정 기준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회사 측이 기본급 기준 1년 반치인 1700%를 제시했는데도 직원들이 거부하자 최 회장이 “5000%인들 행복하겠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으나, 결국 직원들의 완승으로 끝났다. 영업이익 10%를 PS 재원으로 모두 활용하기로 해 1인당 평균 1억원의 역대급 성과급을 받게 됐다고 한다.

삼성전자 직원 블라인드에는 “SK 이직 알아본다”는 요지의 글이 쏟아지고 있고, 노조는 이재용 회장에게 성과급 제도 개선 요구 공문을 보내며 압박하고 있다. 과거 삼성 반도체 공장 기숙사에서는 PS를 놓고 다른 부서 여직원끼리 몸싸움을 벌이고, 담벼락에는 ‘죽어라’ 같은 악담이 나붙기도 했다고 한다. 그 전쟁 같은 양상이 요즘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시대다. 역사상 부에 가장 관심이 높으면서 피해 의식에도 극도로 예민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가장 강력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MZ세대 다루기가 기업 경영의 난제 중 난제가 되고 있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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