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할인권이 배포된 기간은 전통적 극장 성수기인 여름 방학 기간과 겹친다. 3, 4월을 비롯해 관객 수가 원래 적은 시기와 비교해서야 효과 여부를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다. 적어도 최근 한 5년 정도의 같은 기간 관객 수를 살펴봐야 하겠지만 팬데믹 기간이 포함된다. 아쉬운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관객 수가 약 14% 늘었다고 한다. 거칠게 말해 114명 중 100명은 원래도 극장에 갔던 사람들이고, 14명만 새로 발걸음을 했다는 얘기다.
그럼 이 14명은 정부의 기대대로 할인권이 소진된 뒤에도 영화관에 가는 버릇이 생길까. 그러면야 좋겠지만 할인권의 반짝 효과엔 ‘안 쓰면 손해’라는 심리도 한몫한다. 이런 관객은 할인권이 소진되면 어차피 극장을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영화판엔 돈줄이 말랐고, 관객들은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실정에서 예산을 관람료 할인에 지원하는 게 옳았을까. 올해 국내에서 제작되는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영화가 20편도 채 안 된다고 한다. 할인권 배포엔 추가경정예산 271억 원이 들어갔다. 이 예산을 제작비에 투입했다면 제작비 30억 원짜리 시나리오 9편이 크랭크인 할 수 있었다. 정부 출자 펀드가 절반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민간 자본이 대도록 한다면 18편이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 제작되는 영화 수가 당장 2배로 증가한다.관람료 할인으로 한국 영화만 혜택을 본 것도 아니다. 할인권 효과를 가장 크게 본 작품은 우리 영화 ‘좀비딸’이었지만 다음이 할리우드 영화 ‘F1 더 무비’였다.
할인권이 배포된 뒤 취임한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4일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지금 영화 산업은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태다. 이것저것 따져가며 지원할 계제가 아니다”라면서도 “그 돈을 거기에, 이 시기에 지원하는 게 맞는지, 국산 영화에 도움이 되는 건지 등에 관해 질문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영화관도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창출하도록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체부는 내년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 예산을 올해보다 100억 원 많은 200억 원으로 증액하는 등 영화 분야 예산안을 올해보다 669억 원(80.8%) 늘어난 1498억 원으로 최근 확정했다. ‘마중물’은 펌프 내부의 공기를 제거해 압력을 유지하도록 만든다. 펌프의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할인권 배포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의 이동과 관람료의 급속한 인상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 등 극장 산업의 근본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어차피 땜질 식으로 쿠폰을 계속 발행할 수도 없지 않나”라고 한다. 산업구조 개혁이 시급한데 허공에 현금만 살포하는 게 꼭 영화 관람료 할인권만의 얘기가 아닌 것 같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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