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주주 자본주의와 노사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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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주주 자본주의와 노사 역학

기자의 개인 퇴직연금 누적 수익률은 최근 두 달간 5%포인트 올랐다. 한국 증시 저평가가 지나치다는 생각에 작년 말 투자 비중을 높인 결과다. 기분이 좋은 한편 주주 권익 강화를 내세운 자본시장 제도 개편 흐름을 되돌리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부 여당 입장에선 1400만 명을 넘어선 개인투자자와 퇴직연금 가입자를 포함하는 폭넓은 지지층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이달 초 상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당론을 뒤집은 것도 이런 정치 지형 변화를 살핀 것으로 보인다. 주주 자본주의 본격화에 따른 파급효과를 면밀히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주주 권익 확대는 勞에 더 불리

당장은 경영계의 우려가 크다. 사외이사·감사 임명에 대한 재량권이 줄어드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주주 권익 강화 과정에서 근로자가 더 큰 피해를 봤다는 연구가 많다. 린 스타우트를 비롯한 일군의 법경제학자들이 “근로자가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내몰리고 있다”며 ‘이해 관계자 자본주의’를 주창한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도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다. 신호철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4월 발표한 논문에서 배당금 지급 증가 및 자사주 매입 등 주주 권익 강화 조치가 근로자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2021년까지 27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본모형을 적용한 결과 주주 자본주의 확대가 노동소득 분배율을 악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 교수는 “올해 상법 개정 이후 배당 확대 및 자사주 소각이 늘어나면 노동 분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양상이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의 ‘뗏법’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대기업 오너 집 앞에서 시끄럽게 시위하면 못 이기는 척 이런저런 요구를 들어준 사례가 많다. 주주 권익 확대를 통해 이사회 경영이 강화된 이후에 이런 요구를 들어줬다가 배임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이런 수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힘의 작동 방향 주시해야

근본적으로 주주와 투자자들의 이해는 근로자보다는 사용자에 가깝다. 단기 차익 실현이냐 장기 투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기업이 성장해 더 많은 실적과 영업이익을 올리기를 함께 희망한다. 개인투자자가 늘어날수록 고용 유연화와 생산성 향상 등 노동 개혁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은 복잡한 법. 주주 자본주의가 한국적 환경에서 경영진을 더욱 옥죄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사회에서 소외된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을 시도하다가 무산된 노동이사제가 재추진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여권 일각에서 나온다. 핵심 지지층인 노조와 ‘투자자 화이트칼라’의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 여권이 ‘재벌 문제’에 더욱 강경하게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주주 자본주의는 노(勞)와 사(使)만 있던 경영 현장에 제삼자가 새로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사자가 늘어난 만큼 각종 현안에 대한 논의와 해법 도출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이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지가 어려움에 몰린 한국 산업의 돌파구 찾기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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