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고 물었을 때 인공지능(AI)이 ‘분쟁 지역’이라고 답하지 않게 하려면 한국형 대규모언어모델(LLM)이 꼭 필요합니다.”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장은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버린 AI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주권의 문제”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1988년 출범한 KOSA는 국내 최대 민간 소프트웨어(SW) 산업단체다. 회원사는 1만5000곳에 달한다. 기업 간 거래(B2B)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인 유라클을 2001년 창업한 조 회장은 지난 2월 협회 3연임에 성공하며 외연 확장을 주도해왔다. 협회 명칭을 5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고 AI 반도체·클라우드·데이터 등 AI 전반을 아우르는 협회로 기능을 재편하고 있다.
◇소버린 AI, 고립 아닌 통제로 바라봐야
조 회장이 말하는 소버린 AI는 모든 기술을 국산화하고 우리끼리만 사용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영국 정보기관 MI6가 2021년부터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를 폐쇄형 전용망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각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언더 컨트롤’ 개념에 근거해 AI를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근 극소수 빅테크의 생성형 AI가 산업 구조 전반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조 회장은 “AI산업은 승자독식 구조”라며 “챗GPT 같은 글로벌 LLM 위에 붙는 수많은 에이전트 가운데 국산 콘텐츠·서비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기준 세계 AI 서비스 시장은 오픈AI의 챗GPT가 60.5%,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코파일럿이 14.3%를 차지하는 등 미국 기업이 전체 시장의 99%를 점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회장은 ‘국가를 위한 기술’의 관점에서 AI를 개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술과 플랫폼을 중심으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1조8000억원 규모 AI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인프라 투자를 늘리기로 했지만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KOSA는 올 4월 ‘AI 가치사슬 혁신과 전 국민 AI 일상화를 위한 1조5000억원 추가 예산 편성’을 건의하기도 했다. AI 컴퓨팅 센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인프라 외에도 고품질 AI 데이터 관리 플랫폼 구축, AI 모델 개발 등 균형적인 개발을 건의했다. 정책 목표 중 최우선으로 제시한 것은 외국산 GPU와 SW 의존을 줄이기 위한 ‘국산 반도체 기반 맞춤형 AI 시스템’ 구축이다.
◇기술 주권과 수출, 두 마리 토끼 잡아야
조 회장은 한국형 ‘하이브리드 소버린 AI’ 전략을 제시했다. 국내에선 통제 가능한 공공 AI 모델을 구축해 주권과 공공성을 확보하고, 해외로는 각국의 정책과 문화에 맞춰 우리 AI 기술을 수출하는 방식이다. 해외 우수한 LLM을 응용해 융합하는 유연한 접근도 포함된다.
조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대기업은 AWS, MS 등 미국 클라우드를 사용하면서도 빅테크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과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 기업은 국내 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 리벨리온과 개념검증(PoC)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가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민간 참여를 가로막는 조항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신형 GPU 1만 개를 확보해 이르면 2027년 국가AI컴퓨팅센터를 여는 계획을 세우고 사업자 공모에 나섰다. 하지만 공공지분 51%, 민간 지분 49%로 제한된 지분 구조 탓에 기업들의 참여 유인이 떨어져 공모가 두 차례 유찰됐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이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AI 투자 과하다고? 오히려 남는 장사”
조 회장은 일각에서 제기된 ‘GPU를 너무 급하게, 너무 많이 사들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다양한 인프라가 마련돼야 부가적인 기술도 개발되고 시장도 열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GPU 확보 예산이 지나치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도 “그것도 안 쓰고 뭘 하겠다는 거냐”며 “구형 인프라가 되더라도 학교나 기관에서 AI를 연구개발하는 데 쓸 수 있으니 낭비가 아니라 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형 AI는 결코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국내에 10여 개 LLM 개발사가 있고, 일부는 해외 시장에서 통하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글로벌 AI 기업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 콘텐츠와 기술 자산 사용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