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54〉 [AC협회장 주간록64] 연기금이 벤처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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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54〉 [AC협회장 주간록64] 연기금이 벤처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1000조원이 넘는 자금이 묶여 있다. 이름하여 '공적 연기금'이다.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사학연금, 우체국 보험, 공무원연금 등 68개 법정기금의 총 운용자산은 2024년 기준 1023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 중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투자되는 자금은 전체의 1%에도 못 미친다. 즉, 1000조원이 넘는 미래자산이 정작 미래산업에는 투자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금 저성장,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삼중의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공적 연기금은 여전히 국채나 대기업 채권, 상장사 중심의 주식에만 투자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수익률과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연기금 특성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를 위한 안정성'과 '미래를 위한 성장성'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연기금이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부담은 다음 세대에게 돌아갈 뿐이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이미 해법을 제시했다. 68개 법정기금의 5%를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의무 투자하자는 제안이다. 이는 입법을 통해 가능하며, 전체 자금의 단 5%만 투입해도 연간 약 51조원의 민간 주도 벤처자금이 유입된다. 이는 단순히 투자금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벤처 생태계 선순환 고리를 완성하는 '시스템 구축'이다. 스케일업 단계에서 성장 자금, 회수시장으로 유입, 글로벌 진출을 위한 준비금 등에서 연기금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다.

문제는 연기금 투자 방식이다. 정부는 연기금이 직접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형 모태펀드나 전문 운용사를 통한 출자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 미국의 캘퍼스(CalPERS)나 싱가포르의 GIC도 같은 방식으로 유망 비상장 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한국이 이 모델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CalPERS)'는 전체 자산 중 약 5%를 비상장 벤처 및 PE 시장에 할당하고 있으며, 이는 AI, 바이오, 클린에너지 등 혁신 분야에 집중돼 있다. 싱가포르 GIC 역시 정부의 전략산업 육성과 연계된 방식으로 연기금 자금을 배치하며,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는 공적자금을 활용한 초기 마중물 투자의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이들은 단지 수익률이 아닌,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정책 목적까지 동반 달성하고 있다.

또 하나의 열쇠는 퇴직연금이다. 국내 퇴직연금 자산은 300조원을 넘어섰지만, 벤처투자는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반면에 미국은 IRA(개인형 퇴직계좌)를 통해 일정 조건 하에 스타트업에 대한 간접 투자나 세컨더리 펀드 참여를 허용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일정 비율, 일정 조건 하에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출자를 허용해야 한다. 장기자금이 장기성장산업으로 흘러가는 것, 이것이 자본의 건강한 흐름이다.

문제는 결국 실행 의지와 제도 설계다. 지금까지도 일부 연기금은 “투자 여력은 있지만 규정상 어렵다”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고위험자산인 비상장주식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를 넘기 위해선 국회 차원의 입법이 필수다. 법정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혁신산업 투자'를 명시하고, 일정 비율 이상을 정책형 모태펀드, AC 전용펀드, 세컨더리펀드 등 간접 구조로 유입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연기금의 책임 회피를 막으면서도,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실용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지점은 국민적 신뢰다. 연기금은 국민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모험자본 시장 진입에 대한 국민적 설득과 투명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새 정부는 '기금의 기술기반 창업 투자'가 단기 수익률보다 중장기적인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성과공시, 손익분석, 회수 데이터 공개 등을 통해 투명한 운용체계와 사후평가 시스템을 병행해야 한다. 투자성과는 결과이지만, 신뢰는 구조에서 온다.

결국 연기금 벤처투자는 단순한 정책 실험이 아니다. 국가가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자 대답이다. 이제는 '안정적 수익률'이라는 명분 뒤에 숨지 말고, 대한민국 기술주권과 청년세대 미래를 위한 과감한 전환을 택해야 할 때다. 새로운 정부는 연기금이 더 이상 과거에 투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돈으로, 국민의 미래를 설계하는 진짜 '투자국가'가 되는 것. 그것이 벤처생태계를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 glory@cnt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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