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 앞서 따져봐야 할 것들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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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처음 제기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이다.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후 전작권 전환은 민주당 정권의 숙명처럼 여겨졌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미국과 2012년 4월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합의했다가 이명박 정부 때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3년 늦춰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0월 한·미는 시기는 특정하지 않고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했다. 그 조건은 △연합방위를 위한 충분한 군사적 능력 확보 △동맹의 포괄적인 북한 핵·미사일 대응능력 확보 △안정적인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 조성 등이다. 30여개의 세부 조항도 있다. 이 조건들이 모두 갖춰지면 한국이 전작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전작권 전환에 적극적이었지만, 관철하지 못한 것은 미국의 부정적 기류가 강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과 본격 패권 경쟁을 벌이기 전만 해도 주한미군의 주 역할은 대북 대응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군사력을 급격하게 증강한 중국의 대만 위협을 미국이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안보 정책 실세로 불리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 차관은 전작권을 한국군에 넘기고, 미군은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일 회의에서 중국의 무력 증강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전략적 유연성으로 상징되는 주한미군 역할 변경론, 즉 병력 및 전략무기 차출이 기정사실화 된 듯하다. 주한미군 1만명으로 감축, 주한미군 사령관 지위 격하와 주일미군 중심 얘기도 나온다. 이미 지난 3월 임시 전략지침에서 미군은 중국 견제와 본토 방어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동맹국에 맡긴다는 구상을 내놨다. 대북 대응은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런 차에 한국에서 전작권 전환 공약이 나오니 미국으로선 ‘울고 싶은 차에 뺨을 맞은 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전쟁 발발을 전제로 한 전작권은 단순히 ‘자주’라는 명분으로 접근할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인 만큼 자존심을 떠나 국익과 안보를 위해 현실에 기반한 냉철한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작권이 전환되면 미군이 한국군 지휘를 받아야 한다. 2차 대전 이후 해외 파병 미군이 다른 나라 지휘를 받은 적이 없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모든 군사작전을 총괄하는 유럽동맹 최고사령관(SACEUR) 보직을 미군 유럽사령관이 겸임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3월 SACEUR 보직을 유럽에 넘기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나토 유럽 국가에서 ‘미국 이탈’ 신호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전작권이 전환되면 주한미공군이 일본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전작권이 전환될 경우 미군이 한국군 지휘에 응할지, 지휘를 받게 되더라도 미군의 주요 전략자산 운용을 한국에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군이 그런 역량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전작권 전환이 자칫 주한미군 감축과 전략자산 이동 명분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작권 전환을 요구하기 위해선 한국 독자 방어 능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2014년 합의한 ‘조건’을 여전히 갖추지 못한 게 현실이다. 북한 핵·미사일을 선제타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대량 응징 보복(KMPR)으로 구성된 ‘3축 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요격 능력 등 일부를 확보했으나 완비하려면 갈 길이 멀다. 완비하더라도 북한의 ‘벌떼 미사일’ 공격에 여전히 취약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휴전선 부근에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가 한꺼번에 수도권으로 날아올 경우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완비 이후에도 정찰위성 등 탐지, 요격, 타격 능력을 상당 부분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한·미가 2014년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한 때에 비해 북한이 핵무기를 수십기로 늘리는 등 핵 능력을 대폭 증강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전쟁 발발 시 북한 핵 대응이 핵심이 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미군만이 할 수 있다.

물론 언제까지 한국 방어를 미국에 의지할 수는 없다. 미군의 동아시아 태평양 전략이 중국 견제를 위한 대만 방어에 중심이 옮겨가고, 심각한 자국 재정 적자를 감안하면 한국 방어를 위해 돈을 쓰지 않겠다는 흐름은 트럼프 행정부가 끝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전작권과 더 많은 방위비 부담을 한국에 넘기려 할 가능성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주국방 조건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비단 미국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국방비를 늘려갈 필요가 있다. 2020년대 국방비 연평균 증가율이 4.65% 수준이다. 국방비를 연평균 7%씩 늘리기로 한 2023년 국방 중기계획만 제대로 지킨다면 3년 뒤 연간 국방비는 80조원으로 증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지금의 2, 3% 수준에서 3%로 늘어나는 것이다. 2030년대 초반엔 1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체 스텔스 전투기 개발, 정찰위성 추가 확보 등 북한 핵·미사일 억지 및 타격 능력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국방 연구·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늘려 함정·전투기 소프트웨어와 레이더 등 첨단 기술 국산화를 이뤄 K방산이 더 뻗어나간다면 ‘일거양득’이다.

[홍영식 칼럼] 전작권 전환 앞서 따져봐야 할 것들

협상 측면에서 전작권 전환을 한국이 먼저 요구하는 게 타당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전작권 전환 문제는 국방비·방위비 분담금 인상, 한국의 함정 건조 강점 등과 엮어 핵 잠재력과 핵추진 잠수함 건조 기술 확보 등을 위한 주요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이 아닌 미국이 전작권 전환을 먼저 요청하는 구조가 되면 협상에서 우리의 요구 사항을 더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홍영식 한국경제매거진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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