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자율주행 시대, 보안은 생존의 조건](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06/23/news-p.v1.20250623.9ceac4e7df6b4919b9e9191f98381499_P3.jpg)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차량은 더 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수십개의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달리는 컴퓨터'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생성·처리되는 데이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 민감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의 진화 속도만큼, 데이터를 얼마나 안전하게 다루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이를 겨냥한 보안 위협 역시 더 지능적으로 고도화된다. 차량 해킹과 알고리즘 위·변조, 주행 데이터 유출 등은 단순한 기술 결함이 아니라 고객 신뢰와 기업 경쟁력에 직결되는 중대한 비즈니스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자율주행·자동차 소프트웨어(SW) 기업들 사이에서는 정보보호와 개인정보보호를 아우르는 국제 인증 체계를 도입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 내재화하려는 흐름이 뚜렷하게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ISO/IEC 27001과 ISO/IEC 27701이다. 이는 단순한 '보안 인증서'가 아니라, 보안 체계를 '운영-점검-개선'하는 전 주기적 역량을 요구하는 국제 표준이다. 기업이 이를 3년 이상 연속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단발적인 대응이 아닌, 조직문화에 보안이 정착돼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최신 표준인 ISO/IEC 27001:2022은 클라우드, 원격 협업 등 새로운 업무 환경의 리스크 대응까지 포함하고 있어 중요성이 더 커진다.
특히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OEM), 상위 부품 공급사(Tier1)와 협업하는 기술 기업에 요구하는 보안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술 제안 이전에 데이터 기밀성과 알고리즘 보호 수준을 검증받는 것이 필수조건이 됐고,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협업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만큼 기술 유출이나 보안 리스크에 대한 감도도 사회 전반에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보안 중요성은 실제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최근 국내에서는 AI 반도체 패키징 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려 한 혐의로 한 기술자가 공항에서 체포됐다. 해당 기술은 국가 핵심 전략기술로 분류될 정도로 민감한 정보였으며, 불과 몇 달 사이 유사한 유출 시도가 잇따랐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기술 유출 사건은 2022년 12건에서 2024년 27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이 중 40% 이상이 국가 핵심 기술과 관련돼 있었다.
해외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2023년 테슬라에서는 전직 직원 두 명이 7만5000여명의 개인정보를 외부로 유출해 회사가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섰고, 토요타는 외부 협력사 및 클라우드 설정 오류로 수년간 고객 정보와 위치 데이터가 노출되는 사고를 겪었다. 이후 자동화된 설정 점검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글로벌 보안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했다.
이제 보안은 연구개발(R&D) 뒤에 존재하는 기능이 아니라, 제품의 신뢰성, 기업의 생존력, 시장 내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실제 내부 정책 정비, 전사 보안 교육, 리스크 평가 및 감사 체계 등 보안 거버넌스를 전사적으로 강화하는 흐름은 단기적으로는 부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를 확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신뢰는 천천히 쌓이고 한순간에 무너진다. 자율주행이라는 복잡한 기술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혁신적인 기술력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 바로 보안에 대한 진지한 태도다. 그것이 기술의 신뢰를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
황부현 스트라드비젼 정보보호 총괄 boohyun.hwang@stradvis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