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고 일방적으로 사태가 진정됐다. 중동의 맹주 이란의 대응이 정말 이게 끝인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일단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그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장기화,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 등 전쟁의 여파가 커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절묘한 시점에 이란 공습을 통해 '글로벌 슈퍼파워'의 위상을 확인하고 힘을 과시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더욱 강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려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은 무역협상국에 더 높은 가격이 적힌 청구서를 내밀 수도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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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시기가 절묘하다. 트럼프의 강경한 관세 정책이 부작용과 역풍에 부딪혀 주춤했던 상황이었다. 수입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부과로 미국 내 물가가 치솟고 경기침체 우려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신용등급마저 떨어지자 트럼프는 한발 물러서 관세전쟁을 유예하고 협상 국면으로 접어든 상태다. 무역전쟁을 불사하며 맞대응하고 있는 중국과의 협상은 접점 찾기부터 기대난망이다. 미국 내에선 이른바 '노킹'(No King) 시위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심지어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는 조롱까지 받던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대(對)이란 공습은 전 세계에 미국의 파워를 재확인해준 계기인 동시에 향후 트럼프의 위상과 입지도 강화해주는 '지렛대'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가 이런 지렛대를 획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리고 이익 추구에 경도된 트럼프는 앞으로 이 지렛대를 마치 마술지팡이처럼 국제정치와 외교뿐 아니라 무역 협상에까지 전방위로 사용할 수 있다. 이번 미국의 공습은 이란뿐 아니라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호락호락 응하지 않는 러시아, 그리고 동시다발로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교역상대국들에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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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상호관세 유예종료 시점이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은 지속적으로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자동차와 철강에 품목 관세가 부과되는 가운데 상호관세까지 개시되면 우리 대미수출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과 동맹을 맺은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 협력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미국을 방문해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줄라이 패키지'(7월 포괄합의)라는 말은 쓸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협상을 언제까지나 끌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기한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이란 공습 이후 트럼프 정부가 각 교역상대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더 강경한 자세로 많은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힘을 통한 평화'에 지불해야 할 가격이 얼마나 비쌀지 걱정이다.
hoon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26일 09시12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