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3〉거버넌스의 연속성: 소버린 AI는 다른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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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 뉴딜,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거쳐 이제 이재명 정부는 소버린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AI 대전환을 내세우고 있다. 만약 창조경제를 통해 산업화 시대에 고착된 경제 생태계가 디지털 경제로 탈바꿈되었다면, 이후 총 160조원 규모가 사용된 한국판 뉴딜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면, 더 나아가 디지털플랫폼 정부가 AI 기반 행정 혁신을 실현했다면 지금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어떠했을까. 연속된 축적의 결과는 대한민국을 전혀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렸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한 지금,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로 이어졌다면 우리는 저탄소·친환경 경제 전환을 상당 부분 이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우리 산업 경쟁력은 훨씬 더 단단해져 있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의 거버넌스는 국가적 과제를 선명히 제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실행력과 연속성이었다. 정책은 5년 단위로 폐기됐고, 후속 정부는 새로운 간판을 내걸었다. 성과와 시행착오 모두 자산이 되지 못한 채 인수인계서 한 줄로 축약됐으며 전담 조직은 해체되거나 이름만 바뀌었다. 정권 차별화를 위한 정치가 국익보다 앞선 결과다.

선진국은 달랐다. 독일의 에너지전환(Energiewende)은 2000년 사민당-녹색당 연정에서 시작돼 메르켈과 숄츠 정부까지 20년 넘게 이어지며 독일을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만들었다. 핀란드는 1970년대 교육개혁을 50년간 지속해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최상위권을 지켰고, 호주의 의무연금제도 역시 노동당과 자유당 정권을 거치며 발전해 세계적 모범이 됐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였다.

소버린 AI를 중심으로 한 AI 대전환이 또 다시 5년짜리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국익 기반의 목표와 정교한 실행계획이다. 과거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화려한 구호에 비해 실질적 실행 로드맵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AI 톱3를 외치고 있는 지금, GPU 확보로 허둥대는 정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불안해진다. AI의 연료인 데이터조차 온갖 규제로 활용하기 힘든 상황에서 급진적 규제개혁의 시작이 안 보여 답답하다. 기존과 다른 방법이 다른 결과를 만든다. 전문가 중심의 현실적 목표와 단계별 이행 계획을 명확히 수립해야 한다. 동시에 독립적인 평가·감사 기구를 두어 성과를 정량적으로 검증하고 공개함으로써, 정치적 이해관계가 국가경쟁력을 잠식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둘째,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 체계다. AI는 기술을 넘어 전력·통신과 같은 국가 인프라로 기능할 것이다. 따라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이어질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재생에너지법(EEG)'으로 뒷받침되었듯, 소버린 AI도 다년도 재정 프레임과 법적 안전장치를 통해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예산·계획을 법률로 명시하고, 이를 집행할 전담 기관과 감독위원회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화 없이는 5년 단위 단기성과에 매몰되어 미래 국익에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기존 정치권의 관성과 단기성과 압박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우리에게 다시 기회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국가의 미래는 구호와 이벤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역량을 축적하는 것, 그것이 AI 강국으로 가는 현실적 경로다. 연속성을 보장한 거버넌스 없이는 '넥스트 코리아'도 없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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