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삼궤구고두례'의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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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현재의 중국인 청(淸)의 조선 침략을 일컫는 병자호란은 불과 한 달 반 만에 약체 조선의 참패로 끝났다. 조선 중기 왕 인조는 남한산성 진지에서 나와 지금의 서울 잠실인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 포로처럼 꿇어앉았다. 그러고는 항복의 표시이자 '천자'에 대한 신하의 예법으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했다. 세 번 무릎을 꿇을 때마다 이마를 바닥에 세 번씩 대어 모두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적 인사였다. 후대는 이 사건을 '삼전도의 굴욕'으로 일컫는다. 이미지 확대 삼전도비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삼전도비. 병자호란 때 청에 패배한 조선이 청 태종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어 삼전도에 세운 비석이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옛날부터 중국이 이웃 나라들을 대하던 태도는 이랬다. 지금도 크게 달라 보이지만은 않는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서울안보대화(SDD)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보면서 삼궤구고두례의 그림자가 여전히 아른거리는 듯한 불쾌감이 든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본회의 세션에서 발언 중이던 필리핀 국방부 장관에게 주한 중국 대사관의 실무자급이 자국 입장을 담은 반발 성격의 쪽지를 전달한, 눈을 의심케 하는 외교 결례가 일어난 것이다. 국제행사 귀빈인 일국의 장관이 공식 발언하는 와중에 다른 나라 일개 실무자가 이를 방해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한참 넘어선 일탈이었다. 국제사회 관례와 외교 질서를 무시한 안하무인격 행동이다. 게다가 쪽지엔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유권 논쟁에서 필리핀 손을 들어줬던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이 불법이고 무효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의 행동은 주최 측인 대한민국 정부를 무시한 결례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 정부에도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생길 만큼 행사 운영을 부실하게 한 책임이 있다. 필리핀 장관은 즉석에서 중국을 부끄러움과 품격조차 없는 나라로 규정했다. 이처럼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죄책감 없이 선을 넘는 이유로 먼저 중화사상(中華思想)의 역사적 관성이 꼽힌다. 세계의 중심으로서 서열 낮은 주변 오랑캐는 마음대로 하대해도 상관없다는 잠재의식이 깔렸다는 것이다. 주권국 간 평등보다 힘의 우열 관계로 세상을 본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중국이 21세기 들어 국제 규범과 외교 에티켓을 무시하고 힘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강권 외교'(Power Politics)를 종종 구사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2010년 하노이 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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