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윤석열 선조에 빗대며 정조의 통합·실용 설파
정조, 국정 장악 위해 측근 험담하며 보수파 영수와 내통
이재명 보수인사 대거 포용…TK 첫 30%대 득표 전망도
"정치보복 없다"지만 불법은 단죄하라는 게 대선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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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1일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광역시 계양역 앞 유세에서 유권자들의 요구사항 등을 담은 '진짜 대한민국' 패널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5.5.21 utzz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조선 후기의 위인인 정조를 유세장에 불러냈다. "선조는 환란을 불러들여 산천을 피로 물들였고 정조는 조선을 동아시아 최대 부흥국가로 만들었다"면서 국민의 충직한 도구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또한 "세상에 왼쪽 날개도 있고 오른쪽 날개도 있어야 한다"며 통합과 실용을 말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무능하고 편협한 선조에 빗대면서 그들과 달리 유능하고 관대한 정조처럼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으로 읽힌다.
정조는 조선왕조 518년 역사에서 세종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 성군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역사 드라마에서 나오는 온화하고 사려 깊은 군주는 아니었다. 성격으로만 놓고 보면 독선적이고 괴팍한 할아버지 영조를 빼닮았다. 정치 영역에선 음험하고 비열하다는 인상까지 줄 정도로 노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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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조의 두 얼굴은 보수 강경파인 심환지에게 몰래 보낸 수백통의 어찰에서 잘 드러난다. 정조는 심환지와 외롭게 싸우는 척 하면서 뒤로는 그를 야당 내 비선으로 삼아 내통했다. 정조는 1798년 7월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하고 나서 한 달 만에 우의정에 등용했는데, 어찰에는 '모른 척 하고 있어라'며 인사 시점과 행동 지침을 알려준 것으로 나온다.
정조는 입시 부정도 마다하지 않으려 했다. 심환지의 장남이 과거시험에서 떨어지자 "300등 안에만 들면 합격시키려고 했는데 심히 안타깝다"고 위로하는 편지가 뒤늦게 발각되면서 감춰진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정조는 반대파를 구워삶으려고 측근을 험담하고 내치기까지 했다. 심환지와 각을 세우는 소장파 김매순을 "젖비린내가 나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놈"이라고 폄하하고 충신 서영보를 후레자식(胡種子)이라고 막말을 했다. 세손 때부터 생사고락을 같이 한 처남 홍국영이 최고 실세로 득세하자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나게 한 뒤 탄핵 상소를 빌미로 강원도로 유배 보내 숙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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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후보는 가는 곳마다 "정적을 싹 제거한다면 우리끼리만 남는 게 가능하냐"고 되묻고 있다. '우리끼리'로 갔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소위 '자유 우파' 인사까지 영입한 것으로 봐서는 선거용 구호는 아닌 것으로 비친다. 통합 메시지의 효과는 고무적이다. 각종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고향인 대구·경북 민심도 이 후보에게 마음을 열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30% 벽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역대 대통령은 대선 때 하나같이 정조가 되겠다고 외치다 집권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약속을 뒤집고 보복의 길로 나아갔다. 더구나 이 후보의 경우 아내에 자식까지 온 집안식구가 정권에 탈탈 털린 탓에 "정치보복은 없다"는 메시지의 울림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불법까지 덮어주고 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죄를 철저히 묻되 반대편과는 늘 소통하며 경제를 일으켜세우라는 데 민심이 모아져 있다.
정조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다. 정조가 유독 돋보이는 것은 그가 잘해서라기 보다 다른 조선 왕들이 너무나도 무능하고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 후보든 누구든 집권해서 국력과 국민 수준, 상식에 부합하는 정치만 한다면 정조만큼 높은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22일 11시02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