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임수]방시혁의 ‘분노’ vs 개미들의 ‘분노’

19 hours ago 1

정임수 논설위원

정임수 논설위원
방탄소년단(BTS)은 군 공백기를 끝내고 ‘완전체’로 다시 날아오를 태세지만, 이들이 속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하이브의 주가는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달 들어 코스피가 3,200 시대를 여는 와중에도 하이브 주가는 20%나 빠졌다. ‘BTS의 아버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오너 리스크 때문이다. 방 의장의 주식 부정거래 의혹을 두고 지난주 경찰이 하이브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나선 데 이어 29일엔 국세청이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으로 장난치면 패가망신”이라고 경고한 뒤 금융·사정 당국의 칼날이 매섭다.

하이브 상장 때 2000억 부당이익 혐의

하이브가 주식시장에 입성한 건 BTS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며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한 2020년 10월이다. 방 의장은 상장 하루 만에 국내 8위 주식 부자에 오르며 돈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기업 대주주는 상장 이후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보호예수’ 규제에 걸려 바로 돈을 만질 수는 없었다. 이를 피하려고 방 의장은 사모펀드들과 상장 후 지분 매각 차익의 30%를 넘겨받는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이 중엔 방 의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하이브 전 임원들이 설립한 사모펀드도 있었다.

방 의장 측은 상장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하이브 주식을 가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없다고 알린 뒤 해당 사모펀드에 주식을 팔도록 유도했다. 보호예수 규제를 비켜간 사모펀드들은 상장 직후 5%에 가까운 지분을 내다 팔았고, 방 의장은 계약에 따라 2000억 원을 손에 쥐었다. 금융당국은 방 의장과 관계자들이 상장 과정에서 기획 사모펀드를 동원해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보고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를 두고 방 의장 측은 사모펀드와 맺은 계약은 사적 계약인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가 지분을 대량 매도하면서 상장 첫날 35만 원을 웃돌았던 하이브 주가는 열흘 만에 15만 원대로 수직 낙하했다. 당시 BTS의 군 입대 리스크 같은 애꿎은 이유만 찾으며 주가 폭락에 눈물 흘렸던 개미투자자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투자자들은 5년이 지난 뒤에야 ‘진짜 이유’를 알고 분노하고 있다.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주 간 계약이 상장 과정에서 철저히 은폐됐다는 사실에 기막힐 뿐이다.

이번 사태로 새삼 주목받는 게 하이브 상장 1년 전에 있었던 방 의장의 졸업식 축사다. 방 의장은 모교인 서울대 졸업식에서 스스로를 만든 건 “꿈이 아닌 분노”라고 했다. “최고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음악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에 분노했다”는 것이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혐의로 전방위 수사를 받게 된 방 의장에게 투자자들이 되돌려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주가조작 패가망신” 엄포 아니어야 역대 정부마다 ‘일벌백계’를 다짐했지만 자본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불공정거래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놓고 지분 경쟁을 벌였던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 역시 시세조종 혐의로 재판 중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도 주가조작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혐의 적발부터 법원 판결까지 몇 년씩 걸리는 데다 ‘감옥 가도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처벌 수위가 낮은 탓이다. 이를 해결하겠다며 막강한 권한을 가진 범정부 차원의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이 어제 출범했다. 불공정거래가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자본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원스크라이트 아웃제’도 시행한다고 한다. “패가망신” 경고가 일회성 엄포가 아님을 이번에는 꼭 입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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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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