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에 원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등록금을 17년째 묶어 둬 교수들을 ‘앵벌이’ 연구로 내몰았다. 대학 구조조정은 미루고 미뤄 사회적 수요와 동떨어진 석박사를 양산했다. 교육부는 억울해할지 모르겠지만 연구실에서 젊음을 소진하고도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이들에 비할 순 없을 것 같다.
“이공계 인력 남아도는 것이 문제”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오히려 이공계 인력이 남아도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우리나라 산업 특성상 제조업, 조선업에서 고급 연구 인력이 필요한데 대학은 생명공학, 환경공학 박사만 길러낸다. 교육부 대학 평가나 R&D 지원에서 유리한 분야 중심으로 연구실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학 자체 재정 지원이 ‘0원’인 상황에서 교수들은 국책 과제 수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석박사를 확보해 여러 과제를 돌려 연구비를 충당하고자 한다.정작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대학이 죽지 않을 만큼만 수액을 놔 주면서 구조조정은 회피했다. 석박사 과잉 공급의 원인이다. 대학교수,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직 자리는 연간 1000개도 되지 않는데 석박사는 그 10배인 1만 명이 배출된다. STEPI 조사에 따르면, 국내 박사 인력 고용률은 84.5%이다. 언뜻 고용률이 높아 보이지만 이들 10명 중 6명은 학력 조건이 박사에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에 종사한다. 박사는 석사 자리를, 석사는 학사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뜻이다.
인재 공급 기지로 전락한 한국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면 ‘만능’ 연구자로 인정해 줘야 한다. ‘열정 페이’를 참아내며 정부 과제에 따른 온갖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개인 연구까지 해내야 졸업한다. 2013년부터 10년간 이렇게 힘들게 학위를 딴 이공계 석박사 9만6000명이 한국을 떠났다. 국내에 일자리가 없고, 보상 격차가 크다 보니 ‘탈한국’은 개인으로선 응당 합리적인 선택이다. 수능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도 설명된다. 앞으로가 더 암울하다. 최근 한국은행은 2030 이공계 석박사 62%가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전체 이공계 순유출 인력 가운데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이공계 주요 5개 대학 석박사 인력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첨단 산업일수록 탁월한 인재 1명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한은 보고서에서 해외 이직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연봉이었다. 빅테크와 국내 기업 연봉 격차야 비교가 어려울 정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승진 가능성, 고용 안정성, 연구 환경 등 비금전적인 요인도 영향이 컸다. 국내 연구 생태계가 그만큼 열악하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손해가 따를 것이 뻔한 등록금 자율화나 대학 구조조정은 거론조차 하지 않는 정치, 그에 편승해 자리를 보존하는 관료들이 만든 불합리한 연구 생태계에서 젊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신음하다 떠나고 있다. 정부가 이공계 인력 지원 방안을 속속 발표하고 있지만 현금을 찔끔 쥐여주는 식이지 귀한 인적 자원을 싸게 쓰고 버리는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청년을 낭비하는 분야가 어디 이공계뿐이랴.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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