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은 구체화된 심상 같아서 조형미 이전에 가슴을 파고드는 직관이 먼저 온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부러 그리 넓고 어둑시근하고 오로라 물씬한 조명을 설치해둔 것도, 좋게는 관람객의 감흥을 최고조시키려는 의도일 테고, 또는 압도하여 장악하려는 숭고미의 구현일 것이다.
어쨌든 유리관에서 나와 너무나 인간적인 뒤태를 보여주는 반가사유상에 우리는 종교를 떠나 감동했다. 신라와 백제의 조형이 어떻게 다르고 무슨 차이가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깊은 생각에 빠진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 골똘하고도 외로운 뒷모습에 오래 눈이 가고 마음이 머문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점점 조형, 설치 작품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리움의 이불 전시나 호암미술관의 루이스 부르주아 전시도 예전과 달라진 분위기를 말해준다. 무척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특히나 상당히 불편한 요소를 가진 작품도 많은데, 이제 이런 것들을 마주 본다는 뜻이니까. 우리 사회가 수용한다는 의미이고.
예전에 갤러리를 할 때 어두운 작품이 많았다. 나는 깊고 어두운 작품들을 보며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들어오는 분마다 나더러 어둠의 자식 아니냐고 농담처럼 묻곤 했다. 이후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알게 돼 이런 사정을 여쭤봤다. 그분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정신과 없어질 걸요. 우리가 밝고 환한 것만 좋아하는 건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일종의 회피, 외면이죠. 근데 어두움을 마주 본다! 내 안의 그늘을 응시한다! 이건 보통 멘털이 아니죠. 우리 삶의 모든 면면, 그게 어둠이라도 직면해야 건강한 거죠.”
그래서 최근 어둡거나 서늘한 느낌의 전시가 퍽 많이 열리고 사람들이 보러 가는 것이 다행이고 고맙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 결코 화사하지 않으므로. 작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르나르 뷔페 전시에서도 재밌는 광경을 봤다. 젊은 남녀가 손잡고 그림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너는 왜 이런 그림을 좋아하냐, 너무 어둡고 무섭잖아! 그러자 여자가 손을 탁 뿌리치며, 야, 이게 바로 인생이야! 알겠니?
삶은 때로 부드러운 팔베개를 해줄 때도 있고, 날카로운 가시로 찌를 때도 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태도는 연습할 수 있다. 예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어둠도 그늘도 고통도 그저 응시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품들을 직면하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든 것을 바라볼 힘이 생기더라고.
얼마 전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 다녀왔다. 고즈넉한 미술관에 작품들도 깊디깊었고, 미술관 카페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는 다정했다. 그런데 SNS에서 팔자 좋은 아줌마들이 ‘라떼는! 호호호’ 수다 떨러 가는 곳으로 김종영미술관이 희화화되고 있는 것을 봤다. 그리 볼 수도 있다. 아예 전시도 안 보고 분위기 좋아서 놀러 온 분들도 있겠지.
하지만 미술관에서 꼭 전시를 봐야만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일까. 좋은 공간을 찾아 굳이 먼 곳까지 와서 차 한잔과 조각이 있는 풍경을 즐기는 것. 호호 수다 떨다가도 묵직한 돌조각에 한참 시선이 머무르는 것. 집으로 돌아가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미소로 잠드는 것. 그리고 다음에도 그곳에 다시 가야지 생각한다면 김종영미술관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김종영미술관에도 사유의 방처럼 내 마음을 맞닥뜨리는 공간이 있다. 어두운 방, 덩그러니 혼자 우뚝한 자각상. 만져질 듯한 감각 속에 마주하게 되는 그 혹은 나. 씩씩하고도 애틋해서 한참 눈을 맞추고 가만히 끄덕여줬다.

1 day ago
4
![[부음] 정지원(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법무법인 세종 고문) 모친상](https://img.etnews.com/2017/img/facebookblank.png)
![반도 지형과 민족 기질이 만들어 낸 우리 軍 사고의 뿌리[김정유의 Military Insight]](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5분 칼럼] 대장동 사건 ‘수뇌부’는 누구?](https://www.chosun.com/resizer/v2/QJYMJ5OQF5NNAR2UIPD2RRRC3Y.jpg?auth=de854e14e1e418c9b8cd3367d62443a0291f2f4047aedb89ce134313320d1938&smart=true&width=2700&height=1800)
![[사설] 군 이어 공무원 사회까지 ‘내란’ 물갈이, 도 넘고 있다](https://www.chosun.com/resizer/v2/TC7IP7AWF5DLVAC7AAIGBK63IQ.jpg?auth=bd6fa5ba7ae89147e7399bdab7f7aa301be88505a9b0c9142d0f1aa645dda7e1&smart=true&width=4628&height=3046)
![[팔면봉] 내란 특검도 기간 연장, ‘3특검’의 영장 청구와 기소 몰아칠 듯. 외](https://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