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맡는 배우가 말하는 자비심…이재용 "안 귀한 사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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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그날 나는 붓다를 보았다' 출간…연기 통해 자타불이 경험

"11년 우울증 약 먹기도…자기 돌아보는 시간 많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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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용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배우 이재용이 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수필집 '그날 나는 붓다를 보았다'(불광출판사) 출간을 기념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남이 나하고 다르지 않다는 기준에서 생각해 보면 세상 노동자들 안 귀한 사람은 없거든요."

배우 이재용은 자타불이(自他不二), 즉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이렇게 풀어 얘기했다.

영화 '친구'(2001년)에서 라이터 불로 달궜다가 식힌 나이프로 이준석(유오성)의 관자놀이를 그으며 "괜찮다. 소독했다"는 강렬한 대사를 남긴 건달 차상곤(이재용)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만인이 다 귀하다'는 얘기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악역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재용은 자비를 중시하는 불교 신자다. 일상에서 느낀 불교의 깨달음 등을 알기 쉬운 언어로 소개한 수필집 '그날 나는 붓다를 보았다'(불광출판사) 출간을 계기로 9일 서울 중구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이재용이 자타불이를 체감한 경로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연기였다. 배역을 맡으면 해당 인물의 입장에서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기도 하고 그가 느끼는 희로애락에 공감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이런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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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기 경력 40년을 훌쩍 넘긴 이재용은 책에서 "배우는 연기를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감정의 깊이를 탐구하고,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이해하며 관객과의 심리적 연결을 통해 삶의 다양한 면모를 표현해야 한다"며 "그러다 보면 때때로 말은 배역의 내적 혼란과 갈등이 배우에게 전이될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이재용은 이날 간담회에서 화장실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노동자나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업자 등을 예로 들면서 "그분들이 안 계신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아가게 되겠냐"고 얘기했다.

그는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 '김두한'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순사 미와 와사부로 역으로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겼고 '2010 SBS 연기대상'에서 '대물'로 드라마스페셜 부문 조연상을 받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짧지 않은 무명 시절이 그를 단련시켰다.

"저도 연예인인데 힘든 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 우울증 약을 11년씩 먹었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되는데 과연 그럴 힘이 남아 있나 하는 실망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과도한 음주로 몸이 상해 절에 요양하던 시절 밥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다 서까래에 머리를 부딪힌 뒤 스님으로부터 "아직 멀었다. 더 숙여라"는 얘기를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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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용

[촬영 이세원]

어려운 시절을 경험했기에 사회적 논란에 휩싸인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도 크다.

이재용은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들이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깨닫게 해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여서 소중하지만, 유명해지면서 생기는 사회적 '장식'이 진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여러 논란으로 그 장식이 사라져 초라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재용은 "인기나 부·명예 이런 것들도 조금 부질없다"며 "본질적인 측면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직면한 이들을 향해 조언했다.

sewonle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09일 17시21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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