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택 교수의 D-엣지] 데이터 주권과 금융의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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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택 교수송민택 교수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진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질문에 답만 하던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트로 변하고 있다. 그 배후에는 데이터라는 보이지 않는 동력이 있다. 요즘 우리는 스마트워치가 기록한 심박수, 내비게이션의 이동 경로, 결제 내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 시청까지 수없이 많은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쌓이는 데이터가 결국 AI의 판단력을 키우고 있다. 대출 심사나 보험 리스크 평가, 투자 자문에 이르기까지 AI가 대신하는 시대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이런 결정은 어떤 데이터를 참고로 했고, 어떤 판단에 의해 이뤄진 것인가. 대부분의 과정은 공개되지 않거나 공개되더라도 소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는 내 금융 생활을 바꾸지만 판단 과정은 여전히 블랙박스 속에 남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데이터의 주체인 개인이 역설적으로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생성하는 데이터는 대부분 기업 서버에 저장되고, AI 알고리즘의 재료로 쓰인다. 즉, 나의 위치와 소비 기록을 제공해도 그 대가가 내게 돌아온다는 실감은 없다. 물론 소비자는 내 데이터를 기업이 활용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가치가 어떻게 나한테 환원되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데이터 주권의 첫걸음은 가시적인 보상 경험, 즉 데이터 교환경제다. 내가 제공한 데이터가 실제로 내게 돌아온다는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데이터 주권이 실감된다. 최근에는 소비자의 생활 패턴이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보험료를 할인해 주거나, 구독 서비스를 자동으로 조정해 비용을 절감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앱)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소비자가 데이터를 제공한 결과가 눈앞의 혜택으로 돌아오는 순간, 데이터는 나를 위한 자산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데이터의 진정한 가치는 양이 아니라 맥락(Context)이다. 온톨로지(Ontology)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컨대 병원 기록과 스마트워치의 운동 데이터를 연결하면 '이 사람은 운동을 자주 해서 혈압이 안정적이다'라는 의미가 도출된다. AI가 온톨로지 기반 데이터 해석과 결합하면서, 데이터는 의미 있는 자산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기술은 상업적 분석뿐만 아니라 보건, 교통, 환경 등 사회 문제 해결에도 직접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흐름이 기업 플랫폼 안에서만 작동한다면, 데이터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될 것이다. 데이터 자산화의 진정한 의미는 기술적 효율이 아니라, 사회 전체 차원에서 데이터의 소유와 통제의 균형을 실현하는 데 있다. 정부는 데이터 관리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기업은 데이터를 공정하게 이용해야 한다. 어떤 데이터를, 왜, 어디에 쓰는지 명시하고 그로 인한 가치를 소비자와 나누는 것이다. 개인 역시 자신의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며 디지털 경제의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

또 하나의 해법은 데이터 신탁이나 데이터 펀드 모델이다. 소비자들이 결제 이력이나 투자 데이터를 신탁 기관에 맡기고, 금융회사와 협상해 맞춤형 금리 혜택이나 투자 수익을 공유받는 구조다. 이런 방식은 데이터의 상업적 활용을 투명하게 만들 뿐 아니라, 데이터 주체인 개인이 금융기관과 대등한 협상자로 설 수 있게 한다. 이는 공정한 데이터 거버넌스 질서를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AI는 사람의 판단을 대체할 수는 있어도, 소비자의 주권을 대신할 수는 없다. 금융 민주화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누구를 위해, 어떤 원칙으로 작동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데이터는 자산이자 권리이며 그 권리가 투명하게 환원될 때, 데이터 경제는 사람 중심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방향을 바로잡는 것일 수 있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nagaia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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