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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김동진 기자] 법무부가 최근 '변호사 검색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을 두고 제작사 로앤컴퍼니와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가 8년간 치열한 공방을 벌인 이후 마련된 후속조치다. 우리나라가 법률플랫폼을 제도권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사이 주요국 리걸테크 기업은 법률 생성 AI 서비스의 국내 도입을 추진,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8년간 공방 벌인 로톡 vs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을 개발한 로앤컴퍼니는 리걸테크 기업이다. 리걸테크는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법률적인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등장했다. 리걸테크 기업들은 근로계약서 위험조항 분석과 변호사 광고 등에 AI 기술을 적용, 다수가 법률서비스를 합리적으로 이용하도록 진입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 하지만 대한변협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고초를 겪었다.
로앤컴퍼니가 2014년 출시한 ‘로톡’은 변호사들에게 일정 광고료를 받은 후 법률 자문을 구하는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변호사 목록과 광고를 실어주는 리걸테크 서비스다. 법률소비자 입장에서 영역별 전문변호사를 쉽게 확인하고 어려운 법률용어에 대한 해석도 접할 수 있어 유용하다.
로톡 서비스 이미지 / 출처=로앤컴퍼니
대한변협의 생각은 달랐다. 로톡이 광고료를 지불한 변호사를 법률소비자에게 소개, 알선했다며 변호사가 아님에도 법률사무를 취급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의견차는 2015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로톡을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해당 사건은 무혐의로 처리됐지만, 로톡이 판례 수집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까지 추가해 재차 고발이 이뤄졌다. 마찬가지로 무혐의 처분이 나자 대한변협은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 플랫폼 업체에 광고를 의뢰하는 변호사를 징계하는 내부규정을 만들었다. 이후 로톡을 이용하는 변호사 123인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강행했다. 변호사법에 따라 대한변협이 내린 변호사 징계에 대한 이의신청은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가 맡았고, 법무부는 2023년 9월 26일 징계 처분을 취소하며 8년간의 기나긴 공방에 마침표를 찍었다.
법무부, 로톡 사태 후속 조치 ‘변호사 검색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 공표
법무부는 로톡 사태 이후 규제 공백 상태인 변호사 검색서비스 정착을 위해 후속 조치인 ‘변호사 검색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을 최근 공표했다.
출처=법무부
가이드라인은 총 20개 조로 구성됐다. 변호사 검색서비스의 ▲검색조건 ▲검색결과 표시 ▲상담료·보수액 표시 ▲전문분야 광고 ▲이용자 평가와 후기 등의 규정을 담았다. 가이드라인은 법무부·법원·검찰·스타트업계 각 1인, 학계 4인, 변호사업계 3인으로 이뤄진 변호사 제도개선 특별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완성됐다. 법무부는 변호사 등의 공공성 및 공정한 수임 질서를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관련 법규의 기본원칙에 따라 세부 운영기준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출신 학교나 자격시험의 유형, 기수처럼 정형적·객관적·가치중립적인 정보를 기준으로 변호사를 검색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허용한다. 다만 공직자와의 인맥 지수 등 전관예우 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검색조건은 금지했다.
회원이나 유료 회원 변호사 등을 검색 순위 상단에 정렬하거나 글꼴, 글자 크기 등을 두드러지게 표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한다. 다만 같은 유료 회원 사이에서 지급한 광고비 금액을 기준으로 차등을 두는 것은 법률 비용 상승을 고려해 금지했다.
수임 전 변호사와의 위임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상담료' 표시는 허용하되, 구체적인 위임계약 체결을 전제로 실제 법률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보수액을 사전에 표시하는 것을 금지했다.
변호사 등에게 ‘전문분야’를 표방하는 광고 판매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각 변호사가 구매 가능한 전문분야 광고의 개수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한하기로 했다. 플랫폼 이용자가 전문분야 광고의 공신력을 판단할 수 있도록 각 변호사 등이 구입한 전문분야 광고 목록과 분야별 실적도 공개하도록 했다.
실제로 법률서비스를 경험한 것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이용자에 한해 변호사 평가를 플랫폼에 게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뒷광고’와 ‘음해성 후기’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객관적·정량적 평가가 어려운 법률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해 별점 등 수치화된 형태의 평가 또는 종합평가를 금지한다.
‘변호사 검색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 두고 로톡과 대한변협 엇갈린 입장
법무부의 ‘변호사 검색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 발표에 로톡 운영사인 로앤컴퍼니와 대한변협의 입장이 엇갈렸다.
로앤컴퍼니는 법무부의 가이드라인을 반영해 운영정책을 정비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전관', '전관예우', '전관변호사' 등 공직자 출신 경력을 암시하는 키워드를 로톡 내 변호사 및 로펌 검색에서 차단했다. 광고 영역에서도 '분야별 광고 영역'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표기하고 광고와 비광고의 차이, 노출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반면 대한변협은 법무부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변호사 광고규정에 관한 최종적 권한은 변호사법에 의해 대한변협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며 “가이드라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대한변협은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행위는 변호사법이 허용하지 않는 서비스"라며 "이용자 평가가 이뤄지면 후기가 많은 일부 변호사가 수임 기회를 독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원 변호사 또는 유료 회원 변호사만을 표시하거나 선순위 정렬이 가능할 경우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이 금지한 '중개 또는 알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률플랫폼 제도권 수용 두고 진통 겪는 사이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 국내 법률 시장 잠식 우려
우리나라가 이처럼 법률플랫폼을 제도권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사이 주요국은 생성 AI를 활용한 리걸테크 서비스의 국내 도입을 추진하며 빈틈을 공략한다.
예컨대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 ‘렉시스넥시스’는 수만 건에 달하는 법률 문서와 주요 개념, 내용을 한 페이지로 압축해 제시하는 법률 생성 AI 서비스 ‘렉시스플러스AI’를 제공한다. 패턴과 문맥 파악에 특화된 생성 AI를 활용하는 덕분에 다양한 케이스에 맞는 법률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다. 높은 수준의 법률 문서 초안을 단시간에 작성, 법조인의 업무 효율 향상을 돕는다. AI 챗봇과 대화를 통해 리서치도 가능하다. 이 기업은 지난해 한국에 렉시스플러스AI를 공식 출시하며 한국 법령과 판례 학습을 통한 서비스 고도화를 예고했다.
글로벌 법률 생성 AI 기업인 하비도 국내 진출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내 5대 로펌에 꼽히는 법무법인 세종의 법률 자문 업무 일부에 법률 생성 AI 서비스 제공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비 AI는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법률 문서 내용을 분석할 뿐만 아니라 판례와 규제 검색, 계약서 초안과 보충 내용에 대한 가이드도 가능하다.
리걸테크 후발 주자로 꼽혔던 일본은 어느덧 유니콘 기업 2개를 배출했다. 일례로 2005년 설립된 벤고시닷컴은 가게에서 지불한 요금에 대한 이의제기까지 법률적 상담이 가능하도록 도우며 일본에서 가장 큰 법률상담 사이트로 성장했다. 벤고시닷컴은 챗GPT를 활용한 법률상담 서비스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전자서명 영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벤고시닷컴에는 일본 변호사 절반이 가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주차 위반 딱지를 끊었을 때 처분이 합당한지를 따져보기 위해 ‘두낫페이(DoNotPay)’라는 리걸테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두낫페이는 챗봇 형식의 법률 질의응답 시스템이다. 주차위반 처분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주차 당시 상황을 챗봇에 입력하면, 위반 여부를 판단해 주는 서비스다.
두낫페이 서비스 이미지 / 출처=두낫페이 홈페이지
AI 변호사가 주차 공간이 충분했는지, 관련 표지판이 있었는지, 안내는 충분했는지 등을 이용자에게 묻고 관련 법률을 검토해 이의제기할 경우 승산이 있는지 여부를 알려준다. 이의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주차위반 처분에 대한 철회요청서 작성까지 돕는다. 24시간 상담이 가능하고, 답변을 듣기까지 30초 내외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유용하다. 서비스 이용료까지 무료인 두낫페이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2015년 말, 서비스를 출시한 지 1년 만에 사용자 25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 중 16만명의 주차위반 딱지를 철회해 400만 달러의 범칙금을 회수했다.
이처럼 주요국이 일찌감치 생성 AI 기반 법률 서비스를 출시하고 고도화에 매진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변호사 광고 플랫폼의 제도권 편입조차 난항을 겪었다. 그 사이 글로벌 리걸테크 서비스 기업이 빈틈을 파고들어 경쟁자 없이 우리나라 법률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경일 법무법일 엘앤엘 대표변호사는 “변호사법은 변호사의 공공적 사명과 지위를 명시, 공익적 성격을 강조하며 법원도 변호사의 상인성을 부정한다. 이런 부분이 법률시장, 법률광고에 기술 도입 지체를 야기하는 형국이다. 이는 결국 소비자 접근성을 막고 AI, 글로벌 로펌, 타 직역이 교차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우려된다”며 “법률시장 광고 규제를 둘러싼 로톡과 대한변협의 8년간 공방을 지난 시점에서 이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무조건적 제재는 오히려 법률소비자 선택권을 제약하고 법조계의 글로벌 경쟁력, 타 직역과의 경쟁력을 약화한다. 이제는 규제가 아닌 혁신으로 국민에게 실익을 주고 신뢰받는 법률 서비스 미래를 열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