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간 소송에서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성관계한 소리를 녹음해 제출한 증거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화가 아니라 성관계 과정에서 발생한 신음소리는 '통신비밀보호법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판단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서산지원 나우상 부장판사는 아내 A씨가 남편의 상간녀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면서 "B씨는 A씨에게 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B씨는 A씨의 남편이 배우자가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집으로 오게 하거나 성관계를 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A씨 남편과 3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 사이로 함께 책을 출간하기 위해 필요한 회의를 자신의 집에서 했을 뿐,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씨 남편과 거의 매일 수차례 전화통화를 주고받았다. A씨 남편은 친구를 만난다거나 스크린골프를 친다고 거짓말을 한 뒤 B씨의 집을 찾기도 했는데 주로 늦은 시간에 혼자 방문했다.
A씨 남편은 B씨의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고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새벽 시간 B씨 집을 나서면서 '손하트'를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
핵심 생점은 성관계 여부였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남편과 B씨가 성관계를 하면서 내는 신음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는 B씨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녹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B씨는 이 녹음파일이 증거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공개되지 않는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할 수 없다'고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항변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나 부장판사는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보호하는 타인 간 대화는 원칙적으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육성으로 말을 주고받는 의사소통행위를 가리킨다"며 "A씨가 녹음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성관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와 신음소리로 타인 간 대화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와 남편의 혼인기간, 가족관계, 부정행위 행태와 기간, B씨의 부정행위가 혼인관계에 미친 영향, 부정행위가 명백한데도 B씨가 합리적이지 않은 변명으로 일관한 점 등을 참작해 B씨가 A씨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 액수를 2500만원으로 정한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선 법원이 부정행위를 한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통신비밀보호법상 '타인 간 대화'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 입장에선 부정행위를 한 것이니 증거 능력을 인정하려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당사자 입장에선 외부로 신음소리가 나가는 걸 원하지 않아 '비밀'에 속할 것이다. (신음소리는) 상대방과의 육체적 경험이 표현된 것일 텐데 육성으로 오간 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 간 대화'가 아니라고 본 것은 법원이 다소 제한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