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자동차 시장은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대세'로 여겨지던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미래 모빌리티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2년 전만 해도 전기차 시장은 거침없는 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국내 판매량 통계는 낙관론에 경종을 울린다.
2023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약 1406만대로 전년 대비 33.4% 증가했지만 이는 2022년 60% 넘는 성장률에 비하면 현저히 둔화된 수치다. 국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약 13만9000대로 전년 대비 7.3% 감소하며 2년 연속 역성장했다. 올해 1분기 전기차 판매 역시 전년 동기 대비 큰 폭 감소하며 캐즘 현상 심화를 보여준다.
여전히 미흡한 충전 인프라, 축소되는 정부 구매 보조금, 높은 차량 가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에 더해 화재 위험성 등 전기차 안정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기차 포비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혁신 기술에 매료됐던 얼리어답터들의 초기 구매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지금, 대다수 실용주의적 소비자들은 아직 높은 가격과 충전 불편,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전기차 구매에 확실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자 제조사는 '전기차 올인' 전략을 재고하며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은 2026년부터 순수 전기차로만 출시하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내연기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전기차를 병행 생산하며 유연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프리미엄 내연기관 플랫폼(PPC)과 전기차 전용 플랫폼(PPE)을 함께 가져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메르세데스-벤츠, GM, 현대차 등 다른 제조사 역시 전기차 전환 속도를 조절하고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강화하는 등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하이브리드차가 때아닌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수입차를 포함한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39만 4613대로 전체 자동차 시장 26.5%를 차지했으며, 이는 전년도 대비 24% 넘게 증가한 수치다.
국내 친환경차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 비중은 76.2%에 달하며 증가율 또한 28.8%로 매우 높다. 딜로이트의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의 하이브리드차 선호도는 31%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단기적으로 하이브리드차의 약진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제조사에게는 수익성 확보와 전동화 전환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2050 탄소중립'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지금 하이브리드 열풍이 자칫 전기차로의 완전 전환을 늦추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지 성찰해야 한다.
캐즘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다시금 성장 동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에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보조금 규모를 늘리는 단기 처방으로는 실용주의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충전 인프라의 획기적인 확충과 편의성 개선,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 구축, 무엇보다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더욱이 향후 다가올 자율주행 시대와 로보택시 서비스 확산에 있어서도 전기차는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정밀 제어가 쉽고, 배터리·모터의 유연한 배치로 넓은 실내 공간 확보가 가능해 자율주행 시스템과 탑승자 중심 미래 모빌리티 플랫폼에 최적화된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현재 캐즘 현상에 매몰돼 장기적인 기술 발전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장기 비전과 흔들림 없는 정책 추진이 절실하다. 눈앞의 하이브리드차 판매량 증가에 안주하기보다, 전기차 기술 경쟁력 강화와 관련 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한 과감한 투자·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 캐즘이 더 큰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가 될지, 아니면 장기 침체 시작이 될지는 지금 우리 선택·노력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강건용 한국기계연구원 연구위원 kykang@kim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