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및 무역 협상에 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식을 초월한 강압적 협상술에 세계가 혀를 내두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일본 대표단과 만나 일본의 대미 투자펀드 규모를 즉석에서 4000억달러에서 5000억달러로 높였다. 당초 일본 측이 제시한 규모는 3000억달러였지만 장관급 협상에서 4000억달러로 상향됐고, 트럼프가 다시 일방적으로 5000억달러로 높인 것이다. 그마저 최종 발표 때는 5500억달러로 더 불어났다.
트럼프는 미·일 장관급 협상단이 합의한 ‘일본 상호관세 10%, 투자펀드 이익 미국 배당 50%’ 역시 앉은 자리에서 ‘상호관세 15%, 미국 배당 90%’로 바꿨다. 국가수반은 고위급 협상단이 마련한 합의안에 서명하고 끝내는 게 일반적인데, 트럼프는 마지막에 결과를 뒤집어 버리니 상궤(常軌)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관세협상에서 힘을 앞세운 일방통행을 관철하고 있다. 일본을 포함해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협상을 마친 모든 국가는 미국 농축산물 수입을 확대하거나 개방을 약속했다. 미국 보잉 항공기 구매도 약속했거나 협의 중이다. 미국이란 거대 시장을 포기하기 힘들고, 중국 등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트럼프가 한국에도 똑같은 협상술을 쓸 것 같아 걱정이다. 미국은 25일로 예정된 ‘한·미 2+2 통상협의’를 일방 취소했다. 전날 인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날짜를 다시 정하면 서둘러 출국해 장관급 협상을 벌일 수밖에 없고, 마지막엔 트럼프가 예측불허 카드를 꺼내 들 공산이 크다.
협상 시한은 이제 1주일밖에 안 남았다. 다른 사안은 차치하고서라도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펀드 4000억달러는 한국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크다. 그렇다고 미국 요구를 거부하면 상호관세 25%를 피하기 힘들다. 이처럼 어려운 협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외교적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우리의 경제·안보 이익은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