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봄밤’ 중
‘봄밤’의 첫 문장은 도돌이표와 같다. 아무리 부정하고 벗어나려 해도 번번이 그 앞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끔찍함과 위태로움, 비정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우리 안의 무언가가 달라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안으로 짓눌릴수록 더 멀리까지 튀어 오르는 용수철처럼 감정의 방향이 뒤바뀌는 순간이.
언젠가 한번은 영경을 향한 수환의 사랑을 상상하며 이런 문장을 썼다. “물을 마시지만 물을 침범하지 않는 사랑을 알고 싶었다”(시 ‘측량’). ‘그래 맞아, 산다는 건 끔찍해. 그렇더라도…’라는 마음으로 일으킨 문장이다. 사랑의 모양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사랑은 태어나고 자란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잠시 발치가 환해지는 것도 같다.
안희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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