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가 제 대표작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영화가 오픈되기 전부터요. 설경구 선배는 좋게 나온 리뷰를 보며 '다음 영화 어쩌려고 해. 부담 되겠다'고 하셨죠. 이번엔 능력안에서 100% 했던터라 아쉬움은 없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를 연출한 변성현 감독이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1970년대 납치된 비행기를 둘러싼 수상한 작전을 그린 '굿뉴스'는 변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과 풍자를 더해 완성된 작품이다. 이름도 출신도 베일에 싸인 정체불명의 해결사 '아무개'(설경구)가 중앙정보부장 박상현의 명령을 받고 비밀 작전을 꾸미는 가운데, 엘리트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이 납치범을 속이고 여객기를 되찾는 임무를 맡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변 감독은 "영화 속 이야기는 결국 '모두의 운명이 걸린 기상천외한 작전'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관한 것이지만, 저는 그 안에서 인간의 욕망과 권위, 그리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의 작품 중 제일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감독으로서 제 장기를 모아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모두 쏟아냈다"고 덧붙였다.
변 감독은 '굿뉴스'의 기획 단계부터 "명언"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한 문장을 만들어놨습니다. 이 명언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엔딩으로 두자는 생각이었죠. 제가 살면서 느낀 가장 큰 배신감, 그러나 그게 꼭 배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명언은 권위를 상징한다. 이 영화는 권위를 비우는 영화"라며 "서고명은 이름을 드높이려는 인물이고, 아무개는 이름이 없기에 명언을 개소리로 치부한다. 두 사람은 서로 대비되지만 결국 앞면과 뒷면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또 "고명과 아무개는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결국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용당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서, 결국 이름을 얻는 과정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굿뉴스'는 1970년 일본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여객기가 납치돼 평양으로 향하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변 감독은 "나무위키부터 일본 언론 기사까지 모두 찾아봤다"며 "실제 사건의 핵심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창작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당시 기록을 보며 느낀 것은, 이 사건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구조에 너무 잘 맞았다는 거였습니다. 진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결국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반영하는 이야기죠."
그는 사실주의보다는 우화적 감각으로 접근했다고 밝혔다. "70년대 고증은 지키되 하나의 소동극이면서 '우화'처럼 보이길 원했어요. 이야기가 뜨겁다가 차가워지기 때문에 랩컨실은 주황색, 관제탑은 푸른색으로 설정했죠."
특히 변 감독은 작품 속에 이념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담았다고 했다. "그 시기가 제일 이념이 뜨겁게 대립하던 때잖아요. 지금은 탈냉전, 탈이념 시대인데도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념 문제를 다룰 때, 그걸 지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이념과 다른 행동을 할 때 느끼는 냉소가 있었어요. 관료주의나 이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부딪히는 게 아이러니하잖아요. 그런 감정이 영화 속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굿뉴스'는 변 감독의 첫 본격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그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블랙코미디는 해본 적이 없었고, 피하기도 했다. 사실 겁이 났다"고 털어놨다.
"'기생충' 이후 블랙코미디가 대중적으로 조금 더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감독을 하려고 했을 때부터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음 작품은 안 해본 장르를 해보고 싶었죠. 다 좋아한다곤 했는데 호러는 절대 안 봐요. 무서움을 많이 타거든요."
연출 의도에 대해 변 감독은 "영화 초반엔 생각 없이 웃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중반부부터는 '이게 웃어도 되는 건가?' 싶은 순간이 오고, 마지막엔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구성으로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중심엔 변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설경구가 있다. 한껏 구겨진 '아무개' 역으로 말이다. 감독은 "이번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경구 선배님은 제가 팬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엔 할지 말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서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시나리오에 '구부정하게 걷는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테스트 촬영에서 몇 걸음만 걸으시더니 바로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셨다"며 "그 순간 이 캐릭터는 완성됐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설경구는 변 감독에게 "'니 영화 중 제일 재밌다'"고 말하며 웃었다고 한다. "경구 선배는 '불한당' 처음 보시고는 '이게 상업영화야?'라고 하셨고, '킹메이커' 때는 '좋네? 근데 안 될 것 같아'라고 하셨어요. 좋게는 얘기 안 하시는, 츤데레세요. '길복순' 보시고는 '변성현은 B급 감독이구나' 하셨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들어 너무 기뻤습니다."
'서고명' 역을 맡은 홍경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백'과 '약한영웅'을 보고 이 배우가 참 많이 담을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또래 중 가장 연기를 잘하고,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다고 생각해 작업하고 싶었죠."
'굿뉴스'에서 홍경은 역대급 비주얼로 나와 이목을 끌었다. 변 감독은 "처음엔 굉장히 모델 같이 생겼구나, 비주얼이 굉장히 좋구나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담아내기 좋은 얼굴"이라며 "한국영화 전성기 시절 박해일 선배님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칭찬했다.
"이번에 홍경에게 요구했던 건 몸을 키우라는 거였어요. 7kg을 근육으로 찌워서 군인스럽게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너무 호리호리한 미소년이었거든요. 이번에 엄청 먹고 운동해서 목표를 달성했죠.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시 빠졌다고 하더군요."
홍경의 영어 연기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너무 잘했다. 원어민처럼 들릴 정도였다. 미군과 함께 근무한 설정이라 자연스러운 정도면 됐는데, 욕심이 많아서 더 완벽하게 해냈다"고 평가했다.
류승범 캐스팅 비화는 영화 못지않게 흥미롭다. "류승범은 제 또래 감독들에겐 유니콘 같은 존재예요. 처음엔 거절했지만, 제가 집에 안 가고 12시간 동안 설득했습니다. 결국 술 한잔 하면서 하기로 했죠."
그는 "현장에서 보여준 순발력과 에너지가 대단했다. 제 상상 이상이었다. 그의 재기와 감각에 감탄했다"고 떠올렸다.
깜짝 출연한 전도연은 변 감독과 '길복순' 이후 다시 만났다. "전화로 '선배님, 잠깐 나와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시나리오를 드렸죠. 보시더니 '이걸 어떻게 연기하라는 거야' 하셨는데, 현장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변 감독은 "우아하면서도 웃겼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단 한 번에 이해하시더라"라며 "역시 베테랑이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후 '굿뉴스'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풍자와 블랙코미디를 결합한 독특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변신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해 변 감독은 전작인 '킹메이커'와 비교해 "이번엔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킹메이커'를 다시 보니 너무 가르치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엔 제 생각이 있더라도 '이러이러한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묻고 싶었어요. '굿뉴스'는 웃으면서 보고, 나중에 한 번쯤 생각나는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굿뉴스'에 많은 여백을 남겼다. "배우들이 대사로 표현하는 건 세련되지 못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생각할 수 있게 중의적으로 열어둔 대사가 많았어요. 전작들에 비해 이 영화를 좀 더 만족하는 이유는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변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질문에 "저는 '건바이건'으로 쓰는 사람"이라며 "아이디어는 술자리에서, 대화 중에, 혹은 화가 났을 때 떠오른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설경구 선배님이 나올거냐고요? 선배님과는 이번으로 단도리를 지었지만, 또 함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이 가는 배우니까요."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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