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한 외모, 선한 눈빛, 또랑또랑한 목소리. 과거 파업 뉴스를 전하는 TV에서나 보던 그를 처음 만난 건 몇 해 전 가을이었다. 저명한 진보 성향 노동법 교수의 소개로 만난 자리였는데, 그날 저녁의 화두 중 하나가 주 4일제였다. 주 4일제는 당시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이슈였다. 이야기 도중 비친, 정의당 대선캠프 노동본부장까지 지낸 그의 생각은 의외였다. 당시 시점에서의 획일적인 주 4일제 도입은 가뜩이나 심각한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감안하면 신중해야 하고, 노동정책의 우선순위는 이중 구조 아랫단에 맞춰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는 이재명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영훈 후보자다.
민주노총 출신 첫 고용장관
김 후보자는 이재명 정부 내각 중 가장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된다. 그도 그럴 것이 후보 지명을 놓고는 대선 당시 정책협약까지 맺은 한국노총 인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노동계에선 그 메시지 해석을 둘러싸고 일대 혼돈이 일었고, 16일 인사청문회를 거쳐 장관으로 임명되면 보수·진보 어느 정권에서나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던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첫 부처 수장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냉가슴을 앓고 있다. 과거 투사로 살았던 인물이 노동장관으로 지명되는 초유의 ‘해저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후 그 파도의 크기를 가늠하기도 어려워서다. 그래서일까. 장관 후보 지명 이후 경제단체에서는 의례적인 축하 또는 당부를 전하는 입장문 하나 나오지 않았다.
경영계의 걱정만큼이나 장관 후보 지명 이후 나오는 김 후보자의 발언들이 우려를 낳고 있다. 그는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한 첫 출근길 일성으로 “노동조합법 개정(노란봉투법), 정년 연장 등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이튿날에는 앞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발표한 계속고용안에 대해 “노동계가 참여하지 않은 안을 사회적 대화라고 할 수 있느냐”며 사실상 법정 정년 연장으로 갈 것임을 시사했다. “어떤 제도와 정책도 당위나 명분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도 했지만,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는 기관사를 향한 걱정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우려와 달리 양당 체제의 기성 정치권을 배척하고 대정부 투쟁에 올인하는 민주노총의 강경파와는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걱정은 기우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마침 김 후보자 또한 비슷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그는 첫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일 때와 노동 현안에 대한 생각이 같으냐’는 질문에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며 “모든 일하는 시민을 위해 노동행정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책열차 안전속도 운행해야
‘꿈꾸는 기관사’. 김 후보자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타이틀이다. 장관 후보자 지명 당일에도 그는 부산행 ITX-마음 열차를 운행하며 “마지막까지 안전운행하겠다”고 했다. 그렇다. 기관사의 제1책무는 안전운행이다. 때마침 고용부 내 노정라인의 적통이자 노사관계 법제도에 정통한 관료가 차관으로 임명됐다.
노란봉투법 등 입법의 수준을 넘어 연성혁명에 가까운 일대 전환기에 기관사와 부기관사가 적정 속도로 안전한 정책열차를 운행해주길 기대한다. 열차에는 근로자, 조합원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민이 타고 있다. 정부는 이익단체가 아니며 전세버스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