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 칼럼] 투표, 결정, 그리고 행동경제학

1 day ago 2

[박준동 칼럼] 투표, 결정, 그리고 행동경제학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를 하느냐 마느냐는 오롯이 개인의 자유다. 투표했는지 정색하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안 했다고 해서 제재를 가하지도 않는다. 몸이 아프거나 더 긴박한 일이 있으면 안 할 수도 있다. 이번엔 찍을 사람이 없어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라면 설득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귀찮아서, 놀러 가야 해서, 굳이 나까지 투표해야 하나 하고 빠지는 것은 곤란하다.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 던져버리는 일이어서다.

21대 대선 본투표일인 오늘 소크라테스의 다음 질문을 되새겨 보길 권한다. “만약 당신이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면 그 배의 책임자로 이상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그냥 아무나 시키겠는가? 아니면 항해의 규칙과 요구사항을 제대로 배운 사람으로 정하겠는가?”(플라톤의 <국가> 6권) 누구라도 후자(後者)라고 답을 할 것이다. 투표하지 않는 것은 ‘아무나’도 상관없고 배가 좌초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투표는 아무렇게나 직관적으로 하는 행위여서는 안 되고 하나의 기술이 돼야 한다고 봤다. 교육받은 시민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그렇게 제한된 투표권은 19세기 존 스튜어트 밀이 대중교육을 주창한 후에 모든 성인에게로 확대됐다.

어른이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게 됐지만 모든 사람이 제대로 투표한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소크라테스 질문에서처럼 ‘아무나’와 ‘항해 전문가’ 둘만 있다면 선택이 쉽다. 하지만 모두가 항해 전문가라고 주장한다면 어떤 사람이 더 적격인지 가려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 투표 방법론으로 써먹기 제격인 학문이 있다.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에선 사람이 사고(思考)할 때 때에 따라 시스템1과 시스템2의 서로 다른 체계가 작동한다고 본다. 시스템1은 비명이 나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빨리 작동하는 체계를 말한다. 하지만 시스템2는 머릿속으로 17×24의 답을 푸는 것처럼 집중하고 논리와 이치를 따져야 하는 사고체계다.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시스템1과 시스템2는 호불호로 나눌 수 없으며 살아가는 데 둘 다 필수다. 앞차가 갑자기 멈춰 나도 급정거해야 할 때 시스템2로는 안 된다. 대신 여러 가지를 따져야 하는 것은 시스템1이 할 수 없다. 심리학 연구 결과를 경제학에 접목한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기본 전제를 부정한다. 대신 ‘대체적으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때론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행동한다’고 바꿔놨다. 주식시장에서 폭등과 폭락이 발생하는 것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오늘 투표부터는 시스템1을 접고 시스템2를 가동해 보자. 인상과 감정, 어지러운 선거 구호, 진보인지 보수인지 자신도 잘 모르는 정치 성향 등에만 이끌리지 말자는 얘기다. 시스템2는 개별 항목으로 접근한 뒤 종합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우선 각 후보 중 누가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을 갖췄는지 따진다. 이어 공약과 정책으로 이동한다. 북한의 핵 위협에서 누가 나를 가장 잘 지켜줄지, 인구 소멸 등 각종 위기를 맞은 한국 사회를 누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지 점검한다. 경제적 측면에선 누가 생산, 투자, 소비 등 구조를 탄탄하게 하고 혁신을 가능하게 할지 신중하게 판단한다. 이후 최종 결론을 낸다.

물론 이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든다. 하지만 17×24를 반드시 머릿속으로만 풀어야 한다면 집중해서 해내듯, 결정과 투표도 집중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Read Entire Article